조선 연표
조선 건국부터 나라를 빼앗긴 1910년까지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임진왜란, 병자호란, 영조·정조의 탕평, 세도정치와 개항 전후의 격변 같은 사건을 연도순으로 봅니다.
1392~1910 · 이 쪽 사건 210건 · 1392~1910
14세기
- 1392하여가와 단심가 — 왕조 교체기의 시조문화1392년 봄 개경에서 이방원이 정몽주를 불러 술자리를 열고 시조를 주고받았다고 전한다.
- 1392조선 건국 — 이성계 즉위정치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우왕·창왕을 잇달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세웠으나, 1392년 7월 17일 개경 수창궁에서 공양왕을 폐위하고 스…
- 1394정도전의 재상중심 정치사상과 요동정벌 추진정치조선 건국의 최고 설계자 정도전은 왕이 개인적 자질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경계해, 학식과 능력을 갖춘 재상이 정치를 주도하고 왕은 상징적 권위를…
- 1394한양 천도태조는 개경 구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풍수적으로도 유리한 새 도읍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1394년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천도를 결정했다.
- 1396한양 도성 축조 — 4대문과 경복궁정책한양 천도 이듬해부터 조선은 유교적 이념에 따라 도성 전체를 계획적으로 건설했다.
- 1398제1차 왕자의 난태조는 개국공신 정도전의 뜻에 따라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웠는데, 건국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다섯째 아들 이방원(훗날 태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 1399개경 환도정책왕자의 난으로 형제와 개국공신들이 살해되는 참극을 겪은 정종은 새 도읍 한양이 불길하다고 여겨, 즉위 이듬해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겼다.
- 1400승정원과 의금부 — 왕권을 뒷받침하는 직속 기구정책조선의 국왕은 의정부·6조 같은 일반 행정 체계와는 별도로, 자신에게 직접 예속된 기구를 두어 왕권을 뒷받침했다.
- 1400제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과 태종의 세자 책봉제1차 왕자의 난 이후에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 1400사병 혁파정책왕자의 난이 두 차례나 벌어질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왕족과 공신들이 저마다
- 1400태종 즉위정치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치며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방원은 형 정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 태종으로 즉위했다.
15세기
- 1401신문고 설치정책태종은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지방 수령이나 관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임금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대궐 문루에 신문고라는 북을 설치했다.
- 1402저화(지폐) 발행태종은 물물교환이나 쌀·베 같은 현물 화폐에 의존하던 조선의 경제 구조를 개선하고자,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돈인 저화를 발행해 유통시키려 했다.
- 1403주자소 설치와 계미자 주조과학태종은 서적 보급을 늘리기 위해 활자를 주조하는 관청인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된 계미자라는 금속활자를 만들게 했다.
- 1405한양 재천도정책정종 때 개경으로 되돌아갔던 도읍을 태종은 즉위 5년 만에 다시 한양으로 옮겼다.
- 1413조선왕조실록과 사고 — 기록으로 남긴 왕조문화조선은 국왕이 세상을 떠나면 춘추관에 임시 기구인 실록청을 설치해 사관들이 남긴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그 왕대의 역사를 정리하는 실록 편찬을 전통으로 삼았다.
- 1413조선의 지방행정 — 8도와 수령·향리·유향소정책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부·목·군·현을 두는 지방행정 체계를 갖췄다.
- 1413호패법 시행정책태종은 16세 이상 모든 남성에게 신분과 이름을 새긴 호패라는 신분증을 지니게 하는 호패법을 시행했다.
- 14146조 직계제 시행정책그동안 6조(이·호·예·병·형·공조)의 업무는 재상들이 모인 의정부를 거쳐 왕에게 보고됐는데, 태종은 측근 재상 하륜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 절차를 없애고 6조…
- 1418충녕대군 세자 책봉과 양녕대군 폐세자정치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은 오랫동안 세자였지만 학문보다
- 1418세종 즉위정치태종은 맏아들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세운 뒤 곧바로 왕위를 물려줘, 충녕대군이 세종으로 즉위했다.
- 1419대마도 정벌(기해동정)전쟁왜구의 노략질이 계속되자 상왕으로 물러나 있으면서도 군사권을 쥐고 있던 태종은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삼아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게 했다.
- 1431박연의 아악 정리문화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은 박연에게 그동안 어지럽게 뒤섞여 있던 궁중 제례음악(아악)을 중국 고대 이론에 맞춰 체계적으로 정비하도록 했다.
- 14346진 개척 — 김종서정책세종은 여진족이 자주 침입하던 두만강 유역을 안정적인 국경으로 확보하기 위해, 김종서를 함길도 절제사로 보내 회령·종성·온성·경원·경흥·부령 여섯 곳에 진(鎮…
- 1434장영실의 과학기구 발명 — 자격루·앙부일구·측우기과학관노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손재주를 인정받아 세종의 발탁으로 명에 유학까지 다녀온 장영실은, 정해진 시각에 자동으로 종을 쳐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 자격루와 해시…
- 1434삼강행실도 편찬문화세종은 충신·효자·열녀의 모범적인 행실을 소개해 백성을 유교 윤리로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게 했다.
- 1434갑인자 주조과학태종 대의 계미자를 개량해, 세종은 이천의 주도로 훨씬 정교하고 인쇄 속도도 빠른 갑인자를 새로 주조했다.
- 1436의정부서사제로 복귀정책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도입한 6조 직계제 아래에서는 재상들의 국정 참여가 크게 제한돼 있었는데, 왕권이 이미 안정된 세종은 6조의 업무를 다시 의정부를 거…
- 14434군 개척 — 최윤덕정책세종은 압록강 상류 유역의 여진족 침입을 근절하기 위해 최윤덕을 보내 파저강(지금의 훈강) 일대의 여진 근거지를 정벌하게 하고, 이 지역에 여연·자성·무창·우…
- 1443훈민정음 창제문화세종은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작업을 홀로 주도했다.
- 1444공법 시행 — 전분6등법·연분9등법정책기존의 토지세 제도는 관리가 매년 직접 논밭을 돌아보고 등급을 매겨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라 판단 기준이 들쭉날쭉하고 부정도 잦았다.
- 1447안견의 몽유도원도문화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 무릉도원을 노닌 것을 화원 안견에게 들려주자, 안견은 단 사흘 만에 그 내용을 몽유도원도로 그려냈다고 전한다.
- 1447훈민정음 창제와 국문 문학의 시작 — 용비어천가문화훈민정음 창제(1443) 후 새 문자를 시험할 과제로 택한 것이 왕조 창업 서사시였다.
- 1450문종 즉위정치세종의 맏아들로 20년 넘게 세자로서 대리청정을 맡아온 문종은 세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 1451화차 개발과 동국병감 편찬과학세자 시절부터 병법과 무기 개발에 큰 관심을 쏟았던 문종은 즉위 후 신기전(로켓형 화살) 수십 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개량형 화차를 직접 설계에 관여해…
- 1451고려사절요 편찬문화세종 대부터 편찬이 진행되던 고려 왕조의 정식 역사서 고려사(기전체)가 완성되자, 문종은 이를 시간 순서에 따라 다시 정리한 편년체 역사서 고려사절요도 함께…
- 1452고명대신 체제 — 김종서·황보인에게 단종을 부탁하다정치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문종은 아직 12세에 불과한 세자(단종)의 앞날을 걱정해, 원로 대신인 김종서·황보인 등에게 세자를 잘 보필해 달라고…
- 1452단종 즉위정치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아직 12세였던 세자가 단종으로 즉위했다.
- 1453계유정난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를 보필하던 고명대신들이 왕족의 권한을 위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한명회 등 측근과 함께 정변을 일으켰다.
- 1455단종의 선위와 세조 즉위정치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수양대군은 2년 뒤 단종을 압박해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즉위했다.
- 1456집현전 폐지와 경연 중단정책사육신 사건의 주모자 대부분이 집현전 출신 학자였다는 사실에 격분한 세조는 세종이 애써 키운 학술기구 집현전을 아예 없애버렸다.
- 1456사육신 사건 — 단종 복위운동의 실패성삼문·박팽년 등 집현전 출신 신하들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인정하지 않고, 명나라 사신 환영연 자리에서 세조를 죽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거사를 계획했다.
- 1457조선의 군사제도 — 5위와 진관체제·제승방략정책조선의 중앙군은 의흥위·용양위·호분위·충좌위·충무위로 이뤄진 5위로 편성돼 왕궁 수비와 수도 방위를 맡았다.
- 1457단종의 죽음정치사육신 사건 이후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 보냈다.
- 1460경국대전 편찬 착수정책세조는 조선 개국 이래 각 시기에 흩어져 있던 법령들을 정리해 하나의 통일된 법전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 1465김시습 — 생육신의 방랑, 최초의 한문소설을 쓰다문화다섯 살에 시를 지어 세종의 칭찬을 받은 신동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에 읽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은 채 평생 방랑길에 올랐다
- 1465김시습과 금오신화 — 한국 소설의 출발문화김시습(1435~1493)은 다섯 살에 세종 앞에서 글을 지어 오세(五歲)라 불린 신동이었으나,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과 이듬해 사육신 사건을 겪고…
- 1466직전법 시행정책건국 초부터 이어진 과전법은 관리에게 토지의 수조권(세금을 걷을 권리)을 지급하되 은퇴 후에도 세습을 어느 정도 허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지급할 토지가 부족해…
- 1467원각사지 십층석탑 건립문화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세조는 도성 한복판에 원각사라는 큰 절을 세우고,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십층석탑을 건립했다.
- 1467이시애의 난전쟁함길도 토착 세력이었던 이시애는 세조가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는 정책을 강화해 함길도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조정에 불만을 품은 지역 세력을 규합해 반란…
- 1468예종 즉위정치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은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19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 1468남이의 옥이시애의 난 진압에 큰 공을 세우며 20대에 병조판서까지 오른 남이는 세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훈구 대신들의 견제를 받아 병조판서…
- 1469성종 즉위와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정치예종이 재위 1년여 만에 급서하자, 세조의 왕비였던 정희왕후는 예종의 어린 아들 대신 자산군(성종)을 왕위에 앉혔다.
- 1470관수관급제 시행세조 대의 직전법 이후에도 관리들이 수조지의 백성을 과도하게 수탈하는 문제가 이어지자, 조정은 국가가 직접 세금을 거둬 관리에게 지급하는 관수관급제로 방식을…
- 1470상춘곡 — 가사문학과 강호가도의 시작문화정극인(1401~1481)이 단종 폐위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 태인(지금의 전북 정읍)에 내려가 만년에 지은 가사로, 문집 『불우헌집』에 전한다.
- 1476사림 등용의 시작 — 김종직과 그 문인들정치친정을 시작한 성종은 세조 즉위 이래 조정을 장악해 온 훈구 공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영남 지방에서 학문적 명망이 높던 김종직과 그 문인들을 대거 등용했다.
- 1478홍문관 설치정책세조가 폐지했던 집현전의 학술·자문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성종은 궁중 서적을 관리하던 기구를 확대 개편해 홍문관을 설치했다.
- 1479여진 정벌전쟁명나라가 건주여진 정벌을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자, 성종은 어유소를 도원수로 삼아 압록강 유역의 여진 부락을 토벌하도록 했다.
- 1481동국여지승람 편찬문화성종은 노사신 등에게 명해 조선 팔도의 지리·역사·풍속·인물을 총망라한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게 했다.
- 1482폐비 윤씨 사사성종의 계비였던 윤씨는 질투가 심하다는 이유로 왕의 얼굴에 상처를 낸 일 등이 문제 되어 폐서인됐고, 이후에도 행실을 고치지 않는다는 대신들의 상소가 이어지자…
- 1485동국통감 편찬문화성종은 서거정 등에게 명해 고조선부터 고려 멸망까지 우리 역사 전체를 편년체로 정리한 통사 동국통감을 편찬하게 했다.
- 1485조선의 과거제와 교육기관 — 성균관·서당·향교문화조선의 관리 선발은 과거를 통한 것이 원칙이었다.
- 1485조선의 신분제 — 양천제에서 반상제로정책조선은 법적으로 자유민인 양인과 비자유민인 천인으로 나누는 양천제를 기본 골격으로 했다.
- 1485경국대전 반포정책세조 때 시작된 통일 법전 편찬 사업은 예종을 거쳐 성종 대에 마침내 완성됐고, 이·호·예·병·형·공전 6전 체제의 경국대전이 정식으로 반포·시행됐다.
- 1493악학궤범 편찬문화성종은 성현 등에게 명해 궁중 음악의 이론과 악기, 무용, 의상, 무대 배치까지 총망라한 악학궤범을 편찬하게 했다.
- 1494연산군 즉위정치성종의 맏아들 연산군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19세로 즉위했다.
- 1498무오사화사관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항우에게 죽은 초 회왕을 조문하는 글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됨)을 사초에 실은 사실이…
16세기
- 1504채홍사 파견과 국고 낭비정책연산군은 전국에 채홍사를 보내 미모의 여성을 뽑아 궁으로 데려오게 하고, 성균관 유생들을 내쫓은 뒤 그 자리를 유흥 공간으로 바꾸는 등 국가 재정을 사치와 향…
- 1504갑자사화생모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경위를 자세히 알게 된 연산군은, 당시 이를 주도하거나 방관했던 훈구·사림 대신들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 1504언론 탄압과 한글 사용 금지정책두 차례 사화 이후에도 연산군에 대한 비판이 언문(한글) 투서 형태로 나타나자, 그는 아예 한글 사용과 교육을 금지하고 관련 서적을 불태우게 했다.
- 1506중종 즉위정치반정 세력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은 즉위 과정에서 아무런 준비나 세력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자신을 옹립한 박원종·성희안 등 반정공신들에게 정국 주…
- 1506중종반정두 차례의 사화와 폭정, 국고 탕진으로 민심을 완전히 잃은 연산군에 맞서, 성희안·박원종 등 훈구 대신들이 군사를 동원해 반정을 일으켰다.
- 1510삼포왜란전쟁조선은 왜인들의 무역과 거주를 위해 부산포·제포·염포 세 항구를 열어주고 있었는데, 조선 조정이 거류 왜인 수와 무역량을 엄격히 제한하는 통제를 강화하자 이에…
- 1517비변사 설치정책삼포왜란 이후 남쪽 왜구와 북쪽 여진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자, 조정은 국방 문제를 전담해 논의하는 임시기구로 비변사를 설치했다.
- 1517향약 시행 — 여씨향약 4대 덕목정책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은 중국 송나라의 여씨향약을 본떠,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덕업상권) 잘못은 서로 규제하며(과실상규) 예의로 서로 사귀고(예속상교)…
- 1518조광조의 개혁정치 — 현량과와 위훈삭제정책중종의 신임을 얻은 사림의 영수 조광조는 과거 시험 대신 학행과 인품으로 인재를 천거해 뽑는 현량과를 도입하고, 향촌 자치 규약인 향약을 전국에 보급하는 등…
- 1519기묘사화위훈삭제로 궁지에 몰린 훈구파 남곤·심정 등은 궁궐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는 글자를 새겨 벌레가 갉아먹게 한 뒤 이…
- 1527작서의 변세자(훗날 인종)의 생일에 맞춰 사지가 잘리고 불에 그슬린 쥐 한 마리가 동궁 뜰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세자를 저주하려는 주술로 해석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 1530서경덕과 황진이 — 화담의 기철학, 송도의 시인문화벼슬길을 마다하고 개성 화담에 은거한 서경덕은 우주의 근원을 기(氣)로 설명하는 독자적 철학을 세워, 스승 없이 홀로 사색으로 일가를 이룬 조선 유학의 이단아…
- 1531김안로의 권력 농단과 중종 후반의 정국조광조 등 사림이 기묘사화로 숙청된 후 중종 후반 정국은 척신 세력이 주도했는데, 그중에서도 김안로는 아들이 부마(공주의 남편)가 된 것을 발판으로 권력을 잡…
- 1540황진이와 기녀 시조문화조선 전기의 기녀.
- 1543백운동서원 설립 — 최초의 서원문화풍기군수 주세붕은 고려 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기려, 그의 고향인 순흥에 사당과 교육 시설을 겸한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 1544사량진왜변전쟁삼포왜란 이후에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던 왜구의 노략질은 중종 말년 사량진(지금의 경남 통영 인근)에 왜선 20여 척이 침입해 조선 수군과 교전하는 사건으로…
- 1544인종 즉위정치중종의 맏아들로 20년 넘게 세자 자리를 지켜온 인종은 중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 1545인종의 승하와 대윤·소윤의 대립정치인종은 즉위 8개월 만에 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후사가 없어 이복동생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했다.
- 1545명종 즉위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정치인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이복동생 경원대군이 12세의 나이로 명종에 즉위했고, 생모 문정왕후가 8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 1545을사사화명종이 즉위하자마자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소윤)은 인종의 외척이었던 윤임(대윤) 세력을 역모로 몰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 1555조식 — 단성소, 칼을 찬 선비의 직언문화남명 조식은 평생 벼슬을 거부한 채 지리산 자락에서 경(敬)과 의(義)를 새긴 방울과 칼을 차고 자신을 벼렸다.
- 1555을묘왜변전쟁왜선 70여 척이 전라도 남해안 일대(달량진 등)를 대대적으로 침입해 여러 고을을 함락시키고 약탈하는 을묘왜변이 벌어졌다.
- 1556직전법 폐지와 녹봉제 전환세조 대 직전법, 성종 대 관수관급제를 거치며 수조지 제도는 계속 축소돼 왔는데, 명종 대에 이르러 관리에게 아예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하지 않고 오직 쌀·베…
- 1559임꺽정의 난운동백정 출신인 임꺽정은 문정왕후 수렴청정기 극심해진 수탈과 흉년으로 살길이 막막해진 농민·유민들을 모아 황해도 구월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 1560신사임당과 허난설헌 — 조선의 여성 예술가들문화강릉의 사대부가 딸로 태어난 신사임당은 시·글씨·그림에 두루 뛰어났는데, 특히 풀과 벌레를 섬세하게 그린 초충도로 이름을 남겼다.
- 1565문정왕후의 죽음과 명종의 친정정치수렴청정이 끝난 뒤에도 20년 가까이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은 비로소 실질적인 친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 1568이황과 이이 — 주리론과 주기론문화16세기 조선 성리학은 우주의 원리인 이(理)와 물질적 요소인 기(氣)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두 갈래로 발전했다.
- 1575동인·서인의 분당정치이조전랑(인사권을 쥔 요직)에 김효원을 추천하는 문제를 놓고 신진 사림인 김효원과 기성 척신 세력에 가까운 심의겸이 대립하면서, 사림은 김효원 지지 세력(동인…
- 1580정철 — 가사문학의 절정, 정치의 그늘문화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 정철은 우리말의 결을 살린 가사문학을 절정으로 끌어올려, 김만중이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이 세 편뿐"이라 극찬한 작품들을 남…
- 1583이이의 개혁 상소와 십만양병설정책붕당의 갈등을 조정하려 애쓰던 이이는 공납의 폐단을 시정할 수미법(대동법의 원형이 되는 구상), 서얼 등용 확대 등 여러 개혁을 상소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 1585정철 — 가사문학의 완성문화정철(1536~1593)은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으로 조선 가사문학을 완성한 인물로 꼽힌다.
- 1589기축옥사 — 정여립 모반 사건전주 출신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는 고변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조선 최대 규모의 옥사다.
- 1592정기룡 — 육전의 이순신전쟁상주 출신의 무관 정기룡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상주성을 되찾은 것을 시작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크고 작은 전투에서 패배를 거의 겪지 않은 육상 지…
- 1592정문부 — 북관대첩, 함경도를 되찾은 의병전쟁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함경도를 휩쓸고 반란민이 두 왕자를 적에게 넘기던 최악의 상황에서, 문관 정문부는 의병을 일으켜 반역자 국경인을 처단하고 길주 일대의…
- 1592임진왜란 발발전쟁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정복의 길을 열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가도입명)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2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동원해 부산으로 침공했다.
- 1592전국 의병의 봉기운동관군이 곳곳에서 무너지자, 경상도 의령의 곽재우를 시작으로 전직 관리·유생·승려들이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해 향토를 지키고 나섰다.
- 1592한산도대첩전쟁이순신은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함대를 배치하는 학익진 전법으로 왜 수군 주력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크게 격파했다.
- 1592진주대첩전쟁진주목사 김시민은 3,800여 명의 병력으로 2만이 넘는 일본군의 공격을 성 안에서 막아내며 진주성을 지켜냈다.
- 1593논개 —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지다전쟁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려 일본군이 대군으로 다시 몰려와 성이 함락되고 민관군 6만이 희생된 2차 진주성 전투 직후, 논개는 촉석루에서 승전을 자축하…
- 1593명군 참전과 평양성 탈환외교일본군이 평양까지 함락시키며 명나라 국경을 위협하자, 명은 이여송이 이끄는 대군을 조선에 파병했다.
- 1593행주대첩전쟁평양성을 탈환한 여세를 몰아 한양 수복을 노리던 권율은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3천여 병력으로 3만에 가까운 일본군의 총공격을 막아냈다.
- 1593훈련도감 설치정책임진왜란 중 조선군이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고전하자, 유성룡의 건의로 조총을 다루는 포수·창을 쓰는 살수·활을 쏘는 사수로 이뤄진 삼수병 체제의 훈련도감이…
- 1596김덕령 — 무등산 의병장, 무고로 스러지다전쟁무등산 자락에서 일어난 김덕령은 용력이 신화처럼 회자되던 젊은 의병장으로, 조정이 익호장군의 칭호를 내릴 만큼 기대를 모았다.
- 1597정유재란과 명량대첩전쟁강화 협상이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 재차 대군을 동원해 침공했다(정유재란).
- 1598노량해전과 이순신 전사, 전쟁 종결전쟁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자 일본군은 본국으로 철수를 시작했는데, 이순신은 조명연합함대를 이끌고 노량 앞바다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끝까지 추격해 전투를 벌…
- 1600이항복 — 오성대감, 전란의 재상정치임진왜란 발발 직후 병조판서로서 선조의 의주 몽진을 수행하고 명에 원병을 요청하는 외교를 주도한 이항복은, 전쟁 내내 병조판서와 영의정을 오가며 흔들리는 전시…
17세기
- 1608선조의 죽음과 광해군 즉위정치전쟁 중 세자로서 분조(임시 조정)를 이끌며 실질적인 국정 경험을 쌓았던 광해군은,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다.
- 1608대동법 시행(경기도)정책그동안 각 지방은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는 공납 제도를 운영했는데, 관리들이 대신 물품을 마련해주고 값을 몇 배로 부풀려 받는 방납의 폐단이 심각했다.
- 1609통신사 파견과 기유약조 — 임진왜란 이후 대일관계 복원외교임진왜란으로 단절됐던 조일 관계는 새로 들어선 에도 막부가 쇼군의 권위를 인정받고자 조선에 국교 재개를 요청하면서 회복의 계기를 맞았다.
- 1610동의보감 완성문화선조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한 어의 허준은 임진왜란으로 작업이 중단되는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 대에 이르러 25권에 달하는 방대한 의학 백과사전 동의보감을 완성…
- 1612홍길동전과 저자 논쟁문화서얼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 집을 떠나 활빈당을 이끌고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주다, 병조판서를 제수받고 율도국으로 가…
- 1613계축옥사정치광해군을 옹립한 대북파는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적통 왕자, 즉 선조의 유일한 적자였던 어린 영창대군을 제거하려 했다.
- 1618인목대비 폐위(폐모살제)정치영창대군의 생모이자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는 아들이 죽은 뒤에도 광해군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다.
- 1618허균 처형 — 호민론을 쓴 대가명문가 출신 문인 허균이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됐다.
- 1619사르후 전투와 중립외교외교만주에서 급성장한 후금(누르하치)이 명을 위협하자, 명은 임진왜란 때 도와준 은혜를 갚으라며 조선에 파병을 요구했다.
- 1620궁궐 중건 사업과 재정 파탄정책임진왜란으로 불탄 궁궐을 복구하는 것은 왕실의 위엄을 되찾는 데 필요한 일이었지만, 광해군은 창덕궁 재건에 그치지 않고 인경궁·경덕궁(경희궁)까지 새로 짓는…
- 1623인조반정 — 광해군 폐위광해군은 명과 후금(청) 사이에서 실리를 취하는 중립 외교를 펼쳤으나, 이는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는 서인 세력의 반발을 샀다.
- 1624어영청·총융청 설치 — 호란 대비 군영 정비정책이괄의 난으로 도성이 함락되는 충격을 겪고 후금(청)의 위협까지 커지자, 인조는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어영청과 경기 일대 방어를 맡는 총융청…
- 1624이괄의 난인조반정에서 큰 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에서 2등 공신에 그쳐 불만을 품은 이괄은, 평안도 병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진격했다.
- 1627정묘호란전쟁인조반정 이후 친명배금으로 돌아선 조선의 태도와, 이괄의 난 잔당이 가져온 정보를 빌미로 후금은 3만 대군을 동원해 조선을 침공했다.
- 1635인조의 영정법 — 전세를 정액화하다정책양난으로 농경지가 황폐해지고 세종 대의 전분6등법·연분9등법 같은 복잡한 절차로 수취의 어려움이 커지자, 인조는 1635년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
- 1636임경업 — 백마산성의 명장, 두 제국 사이에서 지다전쟁병자호란 때 임경업이 지킨 백마산성은 청군이 감히 치지 못하고 우회했을 만큼 단단했다
- 1636병자호란 — 삼전도의 굴욕전쟁국호를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는 조선이 신하의 예를 거부하자 12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침공했다.
- 1645소현세자의 귀국과 의문의 죽음정치병자호란 패배 이후 청에 볼모로 끌려가 8년을 심양에서 보낸 소현세자는, 청이 베이징을 점령해 중원을 장악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며 서양의 천문·역법 지식과…
- 1649효종 즉위정치병자호란 이후 청에 볼모로 끌려가 8년간 심양에서 생활한 봉림대군은, 먼저 귀국해 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형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뒤 세자로 책…
- 1649북벌론 추진정책삼전도의 굴욕을 몸소 겪은 효종은 청을 정벌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겠다는 북벌을 국정 목표로 내세우고, 송시열 등 척화파 산림 학자들을 대거 등용해 명분을 확…
- 1651대동법 충청도 확대정책광해군 대 경기도에서 시작된 대동법은 지주와 방납업자들의 반대로 좀처럼 확대되지 못했는데, 영의정 김육의 강력한 주도로 효종 대에 이르러 충청도까지 시행 지역…
- 1651윤선도 — 어부사시사, 유배와 은둔이 빚은 우리말의 보석문화평생 세 차례 20년 가까운 유배를 살 만큼 타협을 모르던 정치가 윤선도는, 병자호란의 치욕 이후 세상을 등지고 보길도에 부용동 원림을 지어 은거했다.
- 1653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류인물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태풍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좌초하면서, 헨드릭 하멜을 포함한 선원 36명이 조선 땅을 밟게 됐다.
- 1654제1차 나선정벌전쟁만주 북부로 남하하던 러시아(나선) 세력이 청과 충돌을 빚자, 청은 조총 부대의 강력함이 알려진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다.
- 1658제2차 나선정벌전쟁러시아 세력이 다시 남하하자 청은 4년 만에 재차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고, 효종은 신류를 대장으로 삼아 조총군 260여 명을 파병했다.
- 1659기해예송(1차 예송)정치효종이 죽자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서인의 송시열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므로 1년복이 맞다고 주장했고 남인의 윤휴 등은 효종…
- 1659현종 즉위정치효종이 갑작스레 승하하자 맏아들 현종이 뒤를 이어 즉위했다.
- 1662대동법 호남 확대정책효종 대 충청도까지 확대된 대동법은 현종 초 김육의 유지를 이은 서필원 등의 노력으로 곡창지대인 전라도까지 시행 범위가 넓어졌다.
- 1670경신대기근1670년과 1671년 두 해 연속으로 냉해·가뭄·홍수와 전염병이 겹쳐 조선 전역이 극심한 흉년에 시달렸고, 굶어 죽거나 병으로 죽은 백성의 수가 수십만에 이…
- 1674갑인예송(2차 예송)과 남인 집권정치효종비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놓고 15년 만에 예송이 재연됐는데, 이번에는 현종이 직접 서인의 예론을 뒤집고 남인의 주장(1년복)을…
- 1674숙종 즉위정치현종이 갑인예송으로 남인에게 정국 주도권을 넘겨준 직후 세상을 떠나면서, 14세의 숙종이 왕위에 올랐다.
- 1678상평통보 주조·유통그동안 조선은 몇 차례 동전 유통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쌀과 베가 주된 교환 수단으로 쓰였는데, 숙종 대에 이르러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안정적으로 유통…
- 1680경신환국갑인예송 이후 정권을 잡았던 남인의 영수 허적이 왕실 물품인 기름천막(유악)을 왕의 허락 없이 사사로이 사용한 일이 문제가 되고, 허적의 서자가 역모에 연루됐…
- 1680윤휴 사사 — 주자를 고쳐 쓴 사문난적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무너지면서 윤휴도 사약을 받았다.
- 1684회니시비 — 노론과 소론의 분당정치스승 송시열과 제자 윤증의 불화가 서인을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놓은 사건이다.
- 1689김만중의 유배와 국문소설 — 구운몽·사씨남정기문화김만중(1637~1692)은 병자호란 피난선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그해 강화도에서 순절했다.
- 1689기사환국 — 장희빈 왕후 책봉숙종은 총애하던 후궁 장씨가 낳은 아들(훗날 경종)을 서둘러 원자로 책봉하려 했는데, 서인이 정비 인현왕후가 아직 젊다는 이유로 시기상조라며 반대하자 이를 빌…
- 1689송시열 사사 — 서인 영수의 죽음숙종이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하려 하자 송시열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숙종은 이를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 1693안용복, 울릉도·독도를 지키다외교조선은 건국 초부터 두 섬을 문헌에 남겼다.
- 1694갑술환국 — 인현왕후 복위남인이 폐위된 인현왕후 복위를 꾀하던 서인 잔당을 역모로 몰아 숙청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숙종의 반감을 사면서, 숙종은 다시 한 번 정국을 뒤집어 남인을 몰아내…
18세기
- 1701장희빈 사사(무고의 옥)갑술환국으로 밀려난 뒤에도 여전히 숙종의 총애를 받던 장희빈은,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혐의(무고의 옥)로 고발됐다.
- 1708대동법 전국 시행 완성(황해도)정책광해군 대 경기도에서 시작해 효종·현종 대를 거치며 충청·전라·경상으로 확대돼 온 대동법은, 숙종 대 마지막으로 황해도까지 시행되면서 100년 만에 전국 시행…
- 1709정제두 강화 이거 — 강화학파의 시작문화예순한 살의 정제두가 강화도로 옮겨 갔다.
- 1712백두산정계비 건립외교조선과 청 사이에 국경이 불분명해 변경 지역에서 마찰이 잦아지자, 양국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해 국경을 확정하기로 합의했다.
- 1720경종 즉위정치생모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는 것을 어린 나이에 지켜봐야 했던 세자는, 숙종이 승하하자 경종으로 즉위했다.
- 1721신임옥사연잉군을 세제로 세우고 대리청정을 추진한 노론에 맞서, 소론은 이를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붙였다.
- 1725탕평책 실시정책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붕당 대립 속에서 즉위한 영조는, 붕당을 초월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겠다는 탕평책을 표방했다.
- 1728청구영언 편찬 — 최초의 가집과 사설시조문화1728년(영조 4) 중인 가객 김천택이 구전되거나 개인 문집에 흩어져 있던 시조 580수를 모아 엮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집이다.
- 1728이인좌의 난전쟁신임옥사로 실각했던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는 영조가 경종을 독살하고 즉위했다는 소문을 명분 삼아, 이인좌를 중심으로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한때 충청·경상…
- 1741서원 정리 — 붕당의 근거지를 정비하다정책중종 대 백운동서원을 시작으로 전국에 우후죽순 늘어난 서원은 본래 학문 연구와 선현 추모를 위한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붕당이 세력을 결집하고 지방 사림이…
- 1750중농학파 실학 — 유형원·이익·정약용의 토지개혁론문화17세기 후반 유형원은 반계수록에서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되 농민에게도 일정한 토지를 나눠줘 자영농을 육성하자는 균전론을 제시하며 농업 중심 개혁론의 선구가…
- 1750균역법 시행정책양인 장정이 군역 대신 내던 군포는 1년에 2필이었는데, 부담이 지나치게 무거워 이를 피해 도망치거나 신분을 위장하는 백성이 속출했다.
- 1751정선 — 인왕제색도, 조선의 산천을 조선의 눈으로 그리다문화겸재 정선 이전의 산수화는 가보지도 않은 중국의 산을 화보 따라 그리는 관념의 그림이었다
- 1760청계천(개천) 준설정책한양 도심을 가로지르는 개천(지금의 청계천)은 오랜 세월 토사가 쌓여 장마철마다
- 1762임오화변 — 사도세자의 죽음영조와 세자 이선(사도세자)의 관계는 세자의 정신적 불안정과 기행, 이를 둘러싼 노론 벽파의 정치적 공세 속에서 극도로 악화됐다.
- 1776정조 즉위정치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노론 벽파의 견제와 암살 위협 속에서 세손 시절을 보낸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승하하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
- 1776규장각 설치정책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궁중 서고를 확대 개편해 규장각을 설치하고, 왕실 도서 관리를 넘어 신진 학자를 양성하고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치·학술 기구로 키…
- 1778중상학파(북학파) 실학 — 유수원·홍대용·박지원·박제가문화18세기 후반 일부 실학자들은 토지 개혁보다
- 1778서얼허통절목 반포정책양반의 첩에게서 태어난 서얼은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도 문과 응시와 고위 관직 진출에 제약을 받아왔는데, 정조는 이런 차별을 완화하는 서얼허통절목을 반포해 서얼…
- 1780박지원과 열하일기 — 북학과 한문단편문화박지원(1737~1805)은 노론 명문가 출신이나 과거를 포기하고 재야에 살며 홍대용·박제가·유득공 등과 북학파를 이뤘다.
- 1780조선 후기 한글소설과 판소리문화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서당 교육이 확산되며 서민층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문예 활동의 향유층도 양반을 넘어 서민층으로 크게 넓어졌다.
- 1785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문화조선 후기에는 중국풍을 답습하던 기존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진경산수화와 더불어, 백성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낸 풍속화가 크게 유행했다.
- 1785대전통편 편찬정책성종 대 경국대전 반포 이후 300년 가까이 지나면서 새로 만들어진 법령과 관행이 크게 늘어나 있었는데, 정조는 이를 경국대전 체제 위에 정리해 대전통편을 편…
- 1791신해통공 — 금난전권 폐지한양의 시전 상인들은 나라에서 부여받은 금난전권을 앞세워 일반 백성이나 신흥 상인(난전)이 물건을 파는 것을 단속하고 독점적 이익을 누려왔다.
- 1791신해박해 — 진산사건과 최초의 천주교 순교정치전라도 진산(지금의 충남 금산)의 선비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자 천주교 교리에 따라 신주를 불태우고 유교식 제사를 지내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조정이 발칵 뒤…
- 1793장용영 설치 — 국왕 친위부대정책정조는 기존 5군영이 노론 등 특정 붕당·군벌과 얽혀 왕이 완전히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친위부대 장용영을 새로 창설했다.
- 1794수원화성 축성 시작문화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고, 그 인근에 새로운 계획도시이자 성곽인 화성을 짓기 시작했다.
- 1795김만덕 — 제주의 거상, 전 재산으로 섬을 살리다기녀 신분에서 벗어나 객주를 차린 김만덕은 제주 특산물과 육지 물품을 잇는 유통으로 제주 최고의 거상이 됐다.
- 1796수원화성 완공문화2년 9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된 화성은 둘레 5.7km에 이르는 성곽으로, 공심돈·포루 등 실전 방어 기능과 방화수류정 같은 아름다운 누각이 조화를 이룬…
- 1800정조의 죽음정치정조는 재위 24년째인 1800년 등에 난 종기(부스럼)가 악화돼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 1800순조 즉위와 정순왕후 수렴청정정치정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11세의 순조가 즉위했고,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맡았다.
19세기
- 1801공노비 혁파정책정조가 생전에 구상했던 개혁 중 하나로, 중앙 관청에 소속된 공노비(내시노비) 약 6만 명의 신분을 양인으로 해방시키는 조치가 순조 즉위 초에 단행됐다.
- 1801신유박해정조 대에는 비교적 느슨하게 관리되던 천주교(서학)에 대해, 정순왕후는 이를 반대 세력(시파·남인)을 정치적으로 숙청하는 명분으로 적극 활용했다.
- 1804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정치정순왕후가 죽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순조의 장인이자 왕비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 가문에 집중됐다.
- 1811홍경래의 난운동세도정치기 극심한 수탈과 더불어, 조정이 평안도 출신을 차별해 요직에 등용하지 않는다는 지역 차별에 대한 오랜 불만이 겹치면서, 몰락 양반 홍경래는 상인·광산…
- 1816국학 연구의 발전 — 안정복·유득공·김정희문화실학의 실증적 학풍은 우리 역사와 국토에 대한 독자적 연구로도 이어졌다.
- 1834헌종 즉위 — 조선 최연소 국왕정치순조가 승하하자 8세의 어린 세손이 헌종으로 즉위해, 조선 역대 국왕 가운데 최연소 즉위 기록을 세웠다.
- 1839기해박해헌종 초 정국 주도권을 잡은 풍양 조씨 세력은 신유박해 이후에도 꾸준히 교세를 넓혀가던 천주교를 다시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 1846병오박해 — 김대건 신부 순교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조선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가 된 김대건은, 국내에서 비밀리에 사목 활동을 벌이며 외국 선교사의 입국로를 개척하려다
- 1849철종 즉위 — 강화도령정치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안동 김씨 세력은 왕위 계승 서열은 멀지만 다루기 쉬운 인물을 찾다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민처럼 살던 왕족 이원범을…
- 1850김삿갓 — 조선을 떠돈 풍자의 붓문화김병연은 과거 시험에서 홍경래에게 항복한 선천부사를 통렬히 비판하는 답안으로 급제했으나, 그 인물이 자신의 조부임을 뒤늦게 알고는 하늘을 볼 수 없다며 삿갓을…
- 1850세도정치기의 사회 불안 — 정감록과 미륵신앙문화세도 가문의 부정부패와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의 삶이 파탄에 이르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조선 왕조를 대신할 새로운 세상을 예고하는 예언서 정감록이 널리 퍼졌다.
- 1852삼정 문란의 심화정책철종이 친정을 시작한 뒤에도 안동 김씨의 세도는 흔들리지 않았고, 이 시기 전정(토지세)·군정(군포)·환곡(구휼곡 대여) 세 가지 국가 재정 제도, 이른바 삼…
- 1857최한기의 기학 — 조선 사상의 마지막 종합문화최한기는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책을 사 모으는 데 재산을 다
- 1860최제우, 동학을 창시하다단체몰락 양반 출신 최제우는 서양 세력의 침투(서학·천주교 확산)와 세도정치로 인한 삼정 문란 속에서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목격하며, "한울님을 몸에 모신다"는…
- 1861김정호, 대동여지도를 간행하다과학평민 출신 지리학자 김정호가 평생의 지도 제작을 집대성한 대동여지도를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 1862임술농민봉기(진주민란)운동경상우병사 백낙신의 극심한 수탈에 견디다
- 1862삼정이정청 설치정책전국적인 농민 봉기에 놀란 조정은 삼정의 문란을 근본적으로 바로잡겠다며 삼정이정청이라는 임시 개혁 기구를 설치하고, 전국에 개혁안을 공모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
- 1863고종 즉위와 흥선대원군의 집권정치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신정왕후 조씨는 자신과 가까운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고종)을 왕위에 앉혔다.
- 1866병인양요전쟁프랑스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를 구실로 로즈 제독이 이끄는 군함을 보내 강화도를 침공했다.
- 1868오페르트 도굴 사건 — 대원군 아버지의 무덤을 노리다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1866년 두 차례 조선에 와서 통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 1870판소리와 신재효 — 열두 마당의 정리문화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서너 시간에서 여섯 시간짜리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연이다.
- 1871신미양요전쟁1866년 대동강에서 불에 태워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은 아시아 함대를 보내 강화도를 공격했다.
- 1871척화비 — 서양과 화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돌에 새기다정책신미양요에서 미국 함대가 물러간 1871년, 흥선대원군은 서울 종로를 비롯한 전국의 길목에 비석을 세웠다.
1900년대
- 1907정미7조약과 군대 해산정책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법령 제정과 관리 임면권까지 통감부가 쥐게 됐고, 뒤이어 군대 해산이 단행됐다.
- 1907순종 즉위 — 허수아비 황제정치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부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순종이 그 뒤를 이어 대한제국 제2대 황제로 즉위했다.
1910년대
- 1910한일병합 — 대한제국의 멸망정치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며 대한제국이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