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이이 — 주리론과 주기론

1568년 · 안동(도산서원)

16세기 조선 성리학은 우주의 원리인 이(理)와 물질적 요소인 기(氣)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두 갈래로 발전했다. 이황은 이의 절대성과 능동성을 강조하는 주리론의 입장에서, 군주가 스스로 인격과 학식을 닦아야 한다는 내용을 열 개의 도식으로 정리한 성학십도를 왕에게 올렸다. 그의 사상은 영남학파와 동인 계열에 큰 영향을 미쳤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전해져 일본 성리학 발전에도 영향을 끼쳐 이황은 일본에서 동방의 주자라 불리기도 했다. 반면 이이는 이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고 보면서도 실제 작용하는 것은 기라고 본 주기론의 입장에서, 수치제도 개혁과 통치 체제 정비 방안을 담은 동호문답과 성학집요를 저술했다. 그는 현실 개혁적 성격이 강해 공물을 쌀로 걷자는 수미법, 외적에 대비한 10만 양병설 등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했으며, 그의 사상은 기호학파와 서인에 큰 영향을 줬다. 이 두 학파의 사상적 차이는 훗날 붕당 정치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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