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론 추진

1649년 8월 · 한양

삼전도의 굴욕을 몸소 겪은 효종은 청을 정벌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겠다는 북벌을 국정 목표로 내세우고, 송시열 등 척화파 산림 학자들을 대거 등용해 명분을 확보했다. 군비를 증강하고 어영청·훈련도감 등 군영을 정비하며 실제 전쟁 준비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했지만, 청이 이미 중국 대륙을 완전히 장악해 국력 차이가 너무 컸고 조선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결국 북벌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채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흐지부지됐지만, 청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조선중화주의)을 강화하며 조선 후기 사상사에 오래도록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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