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와 기녀 시조
조선 전기의 기녀. 본명 황진(黃眞), 기명 명월(明月), 개성 출신이며 생몰년 미상으로 중종 대 인물로 전한다. 직접적 기록은 없고 여러 일화로만 흔적이 남았다 — 석학 서경덕을 흠모해 거문고와 술을 들고 찾아가 시와 글씨를 배웠고, 지족선사를 파계시켰으며, 박연폭포·서경덕·자신을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했다. 작품 대부분이 인멸되고 시조 6수와 한시 몇 편이 전한다. 대표작 \"동짓ᄃᆞᆯ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 춘풍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는 시간을 자를 수 있는 물건처럼 다루는 발상이 뛰어나다. 임 없는 밤은 길고 임 있는 밤은 짧다는 흔한 탄식을, 남는 시간을 저축했다 모자란 시간에 쓰겠다는 착상으로 바꿨고, \"서리서리\"(감는 모양)와 \"구뷔구뷔\"(푸는 모양)의 대칭을 한자어 없이 순우리말 의태어로만 완성했다. 「청산리 벽계수야」는 벽계수(푸른 시냇물/왕족 이원혼의 호)와 명월(밝은 달/황진이 자신)의 중의법이 특징이다. 다만 진위 문제가 있다 — 「청산리 벽계수야」·「동짓달 기나긴 밤을」·「내 언제 신이 없어」·「산은 옛 산이로되」·「어져 내 일이야」 5수는 진본 『청구영언』·『해동가요』 등에 널리 전하나, 「청산은 내 뜻이요」는 『근화악부』(무명씨)와 『대동풍아』(황진이)에만 실리고 내용도 일치하지 않는다. 조선 여성이 글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에서 기녀는 예외적 위치였고, 여성 시조 상당수가 이들의 작품이라는 점도 함께 볼 만하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진이
- 청구영언
- 해동가요
- 근화악부
- 대동풍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