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이정청 설치
전국적인 농민 봉기에 놀란 조정은 삼정의 문란을 근본적으로 바로잡겠다며 삼정이정청이라는 임시 개혁 기구를 설치하고, 전국에 개혁안을 공모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기득권을 건드리는 근본적 개혁안은 채택되지 못했고, 몇 달 만에 이 기구는 흐지부지 폐지되며 삼정 문란은 개선되지 않은 채 다음 왕조까지 이어졌다. 이는 세도정치 체제 안에서는 아무리 절박한 민란도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는 한계를 보여주며, 이 과제는 훗날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로 넘겨진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정이정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