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사사 — 서인 영수의 죽음
숙종이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하려 하자 송시열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숙종은 이를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송시열은 제주로 유배됐다가 국문을 받기 위해 압송되던 도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여든셋이었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 정권의 이념적 기둥이자 북벌론과 주자학 정통론을 대표하던 인물의 죽음이었고, 이로써 기사환국은 정권 교체를 넘어 한 시대의 종결이 됐다. 그의 죽음은 노론과 소론의 대립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소론은 그의 강경 노선이 화를 불렀다고 보았고, 노론은 그를 순교자로 기억하며 이후 자신들의 정통성을 그에게서 끌어왔다. 5년 뒤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돌아오면서 송시열은 복권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시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사환국
- 숙종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