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 문란의 심화
철종이 친정을 시작한 뒤에도 안동 김씨의 세도는 흔들리지 않았고, 이 시기 전정(토지세)·군정(군포)·환곡(구휼곡 대여) 세 가지 국가 재정 제도, 이른바 삼정은 지방관과 아전들의 조직적인 부정으로 극도로 문란해졌다. 존재하지 않는 땅에 세금을 매기거나,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물리거나, 강제로 곡식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로 회수하는 등의 수탈이 전국적으로 만연했다. 이런 구조적 수탈은 백성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1862년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농민 봉기로 폭발한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정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