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농민봉기(진주민란)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극심한 수탈에 견디다 못한 진주 농민들이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해 관아를 습격하고 아전들을 응징했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라도·충청도 등 삼남 지방 70여 개 고을에서 비슷한 농민 봉기가 잇따라 일어났다. 조정은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해 사태를 조사하게 하고, 삼정의 폐단을 근본적으로 바로잡겠다며 삼정이정청을 설치했다. 그러나 세도 가문의 기득권이 여전히 굳건했던 탓에 개혁은 흐지부지됐고, 삼정 문란의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이런 민란은 이후로도 산발적으로 계속되다가 결국 30여 년 뒤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더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술농민봉기
- 위키백과 임술농민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