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연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겨루던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통일, 발해와 함께한 남북국시대, 후삼국까지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정복, 살수대첩, 황산벌 전투, 나당전쟁, 발해 건국 같은 사건을 연도순으로 봅니다.
기원전 37~936 · 이 쪽 사건 86건 · -57~935
기원전 1세기
- 기원전 57신라 건국정치경주 지역 여러 촌락의 우두머리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세워 사로국(훗날 신라)을 열었다.
- 기원전 37고구려 건국정치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동명성왕)이 압록강 유역 졸본 지역에서 고구려를 세웠다.
- 기원전 18백제 건국정치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 온조가 형 비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유역 위례성에 나라를 세웠다.
- 기원전 17황조가 — 개인의 감정을 노래하다문화『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 유리왕조가 전하는 사연이다.
1세기
- 3유리왕과 국내성 천도정치주몽의 아들 유리왕은 부여에 남아 있다가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내려와 태자가 됐고, 주몽의 뒤를 이어 고구려 2대 왕이 됐다.
- 22대무신왕의 정복 — 부여 공격과 낙랑 병합정치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은 22년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부여를 공격해 대소왕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며, 고구려가 더 이상 부여에 눌려 지내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임을…
- 42가야 연맹 건국 — 김수로왕과 구지가정치낙동강 하류 아홉 촌장(구간)이 다스리던 지역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김수로가 왕으로 추대돼 금관가야를 세웠다는 건…
- 65박·석·김 — 신라 건국설화 속 세 성씨의 시조문화신라 초기 왕위는 박·석·김 세 성씨가 번갈아 차지했는데, 각 성씨에는 저마다의 시조 설화가 전한다.
2세기
- 194고국천왕과 진대법 — 부자상속과 빈민구제의 시작정책고구려 9대 왕 고국천왕은 형제상속 대신 부자상속 원칙을 세워 왕위 계승을 안정시켰고, 을파소를 국상(재상)에 등용해 194년 진대법을 실시했다.
3세기
- 260고이왕의 체제 정비 — 6좌평제와 16관등제정책백제 8대 왕 고이왕은 형제상속을 통해 왕위 계승을 안정시키고, 6좌평제와 16관등제를 마련해 국가 체제의 기틀을 세웠다.
4세기
- 313고구려, 낙랑군을 몰아내다정치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낙랑군은 420년 가까이 한반도 서북부에 남아 있었다.
- 356신라 내물왕과 마립간 시대의 시작정치356년 즉위한 내물왕(내물마립간)은 박·석·김 세 성씨가 번갈아 왕위를 잇던 관행을 끝내고 김씨의 왕위 세습을 확립했으며, 왕의 칭호도 대군장을 뜻하는 마립…
- 371근초고왕의 전성기 — 평양성 공격과 마한 통합정치백제 13대 왕 근초고왕은 남쪽으로 마한의 남은 소국들을 대부분 통합해 오늘날 전라도 일대까지 영역을 넓히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직접 공격해 평양성 전투에서…
- 372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 불교·태학·율령정책아버지 고국원왕이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국가적 위기 속에 즉위한 소수림왕은, 대외 정복 대신 내부 체제 정비에 힘을 쏟았다.
- 384백제 침류왕, 불교를 공인하다정책근초고왕의 손자 침류왕은 즉위한 해인 384년, 동진에서 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처음 받아들였다.
- 391광개토대왕 즉위 — 대정복의 시작정치18세에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즉위 이듬해부터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 지역을 빼앗았고, 이후 요동과 만주 북부의 후연·거란·부여를 잇달아 정복하며 고구려 역사…
- 400광개토대왕의 남정 — 호우명그릇이 말해주는 영향력전쟁광개토대왕은 396년 백제를 공격해 아신왕의 항복을 받고 한강 이북을 차지했으며, 400년에는 왜와 가야 연합군에 시달리던 신라 내물왕의 요청을 받아 5만 대…
- 400신라의 골품제 — 혈통이 정하는 신분정책신라에는 혈통에 따라 정치·사회 활동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골품제라는 폐쇄적 신분제가 있었다.
- 400아직기와 왕인 — 백제 학문의 일본 전파문화백제의 학자 아직기는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의 스승이 되어 한자를 가르쳤고, 자신보다
5세기
- 414광개토대왕릉비 — 고구려가 스스로 남긴 가장 긴 기록문화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려고 414년 국내성(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 동쪽 벌판에 세운 비석이다.
- 418박제상 — 왕제를 구하고 왜에서 순국하다정치눌지왕의 두 아우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혀 있자, 박제상은 먼저 고구려에서 복호를 데려온 뒤 왜로 건너가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남았다.
- 427장수왕, 평양으로 천도하다정치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국내성 중심의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남쪽으로의 진출을 강화하기 위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 433눌지왕과 나제동맹의 시작외교내물왕 대 이후 고구려의 군사적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정치적 간섭에 시달리던 신라는, 눌지왕 때인 433년 백제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함께 견제하기 시작했다.
- 450신라의 화백회의 — 귀족 합의로 나라를 다스리다정책신라에는 국가의 중대사를 귀족들의 합의로 결정하는 화백회의라는 전통이 있었다.
- 475백제, 웅진(공주)으로 천도하다정치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개로왕이 전사하자, 아들 문주왕은 급히 남쪽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 475한성 함락, 개로왕 전사전쟁장수왕은 3만 병력을 동원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공격했다.
- 494문자명왕의 부여 병합정치장수왕의 뒤를 이은 문자명왕은 494년 물길(勿吉)의 압박을 받아 쇠약해진 부여의 왕과 왕족을 받아들여 부여를 고구려에 편입시켰다.
- 500고구려 고분벽화 — 강서대묘문화고구려는 건국 초기 돌을 쌓아올린 돌무지무덤(적석총, 대표적으로 지린성 지안의 장군총)을 만들다가, 후기에는 널길과 널방을 갖추고 그 위를 흙으로 덮는 굴식…
- 500고구려 고분벽화 — 무용총·각저총문화국내성 인근 우산하 고분군,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북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무용총과 각저총이 나란히 자리한다.
- 500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과 서역 교류문화신라는 고구려·백제와 달리 나무 널과 껴묻거리를 넣고 그 위에 돌을 쌓은 뒤 흙으로 덮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을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삼았다.
- 500지증왕의 개혁 — 국호·왕호 확정과 우경 실시정책그동안 "사로국"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나라를 지증왕은 "신라"로, "마립간" 등으로 불리던 군주 칭호는 중국식의 "왕"으로 공식 확정해 국가 체제를 정비…
6세기
- 501무령왕의 중흥 — 22담로 설치정책웅진 천도 이후 극심했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한 무령왕은 지방 주요 거점 22곳에 왕족을 파견해 다스리는 담로 제도를 정비하며 지방 통제력을 회복했다.
- 517법흥왕의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정책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해 관등 제도와 국가 통치 체계를 정비하고, 병부를 설치해 군사권을 왕에게 집중시켰다.
- 532금관가야, 신라에 병합되다정치낙동강 하류 김해 지역에서 철 생산과 해상 교역으로 번영했던 금관가야는, 신라의 팽창과 백제·왜의 압박 속에 국력이 크게 약해져 있었다.
- 538성왕, 사비(부여)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다정책무령왕이 다져놓은 국력을 바탕으로, 성왕은 좁고 방어에만 치중된 웅진을 벗어나 넓은 평야가 펼쳐진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며 국가 체제를 전면적으로 정비했다.
- 553진흥왕, 한강 유역을 독차지하다정치551년 백제·신라 연합군은 고구려를 몰아내고 한강 유역을 나눠 가졌는데(백제가 하류, 신라가 상류), 진흥왕은 2년 뒤 기습적으로 백제가 차지한 하류 지역마…
- 554관산성 전투, 성왕 전사전쟁백제 성왕은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몰아내고 되찾은 한강 하류 유역을 553년 신라 진흥왕에게 기습적으로 빼앗겼다.
- 562대가야의 성장과 멸망정치400년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금관가야 중심의 전기 가야 연맹이 무너지자, 고구려군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고령의 대가야가 5세기 후반 새로운 맹주로 떠올…
- 590온달 — 바보 온달, 아단성에서 지다전쟁가난한 바보라 놀림받던 온달은 평강공주와 혼인한 뒤 무예를 닦아 후주와의 전쟁에서 선봉으로 공을 세우며 고구려의 장군이 됐다.
- 600서동요 — 현존 최고(最古)의 향가문화『삼국유사』 권2 무왕조에 전하는 4구체 향가로, 현존 향가 25수 가운데 창작 시기가 가장 이르다.
- 600정읍사 — 가사가 전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문화『고려사』 악지는 정읍 사람이 행상을 나가 오래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산 바위에 올라 남편이 올 길을 바라보며, 그가 밤길에 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진흙탕물…
7세기
- 601백제의 불교 미술 — 미륵사지·서산마애삼존불·칠지도문화백제는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답게 독자적인 불교 미술을 꽃피웠다.
- 608진평왕과 걸사표 — 수에 군사를 청하다외교53년이라는 신라 역대 최장에 가까운 기간을 재위한 진평왕은 고구려의 잦은 침입에 시달리자, 승려 원광에게 수나라의 군사를 청하는 글인 걸사표를 짓게 해 60…
- 610담징 — 고구려 문화의 대외전파문화610년 고구려 승려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 종이와 먹을 만드는 제조법을 전했다고 전한다.
- 612살수대첩 — 을지문덕, 수 양제의 대군을 격파하다전쟁수와의 충돌은 이미 598년 고구려 장수 강이식이 말갈 군사를 이끌고 요서 지방을 선제공격하면서 예고돼 있었다.
- 642연개소문의 정변과 대당 강경책당의 압박이 고조되던 642년,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보장왕을 새 왕으로 세운 뒤 스스로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
- 645선덕여왕과 첨성대·황룡사 9층 목탑문화진평왕의 딸로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선덕여왕은 백제 의자왕의 잇단 공격으로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잃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
- 645안시성 전투 — 양만춘, 당 태종의 침공을 막아내다전쟁수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의 태종은 연개소문이 정변으로 영류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것을 구실 삼아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 648김춘추, 당과 동맹을 맺다외교642년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고 사위 김품석 부부가 죽는 등 국가적 위기에 몰린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왜에 잇달아 보내 지원을 요청했으나 모두…
- 660계백 — 오천 결사대의 마지막 지휘관전쟁나당연합군 18만이 밀려오자 계백은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나가며, 처자가 적의 노비가 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가족을 제 손으로 베고 출정했다
- 660백제 부흥운동 — 복신·도침과 백강 전투운동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은 주류성을 근거지로,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근거지로 각각 저항군을 일으켜 한때 200여 성을 되찾을 만큼 백제 부흥…
- 660황산벌 전투와 백제 멸망전쟁나당연합군 13만 명이 백제를 향해 진격하자, 백제 장수 계백은 결사대 5000명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맞아 네 차례 싸움에서 모두 승리했다.
- 661흑치상지 — 임존성의 부흥군 명장, 당의 장군이 되다전쟁백제가 무너지자 흑치상지는 임존성에서 열흘 만에 3만을 모아 부흥운동의 깃발을 올렸고, 소정방의 공격을 물리치며 200여 성을 되찾는 기세를 떨쳤다.
- 668고구려 멸망전쟁수·당의 대규모 침공을 여러 차례 막아냈던 고구려였지만, 실권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그의 아들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벌어지며 국력이 급격히 소진됐다.
- 670검모잠과 안승 — 고구려 부흥의 꿈과 내분정치고구려가 망한 지 2년, 검모잠은 유민을 모아 한성에서 부흥의 깃발을 올리고 왕족 안승을 왕으로 세웠다.
- 675매소성·기벌포 전투 — 당군을 몰아내다전쟁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며 옛 백제·고구려 땅에 도독부를 설치했다.
- 681신문왕,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다정치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이를 빌미로 통일 전쟁 과정에서 비대해진 진골 귀족 세력을 대대…
- 685신문왕의 왕권강화 — 9주 5소경과 녹읍 폐지정책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며 즉위 초 진골 귀족 세력을 크게 숙청한 신문왕은, 이를 발판으로 통치 체제 정비에 나섰다.
- 686원효와 의상 — 통일신라 불교 사상의 정립문화당 유학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어 유학을 포기한 원효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토 신…
- 692설총 — 이두를 정리하고 화왕계를 짓다문화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이두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훈민정음 이전 천 년 동안 이 땅의 문서 생활을 떠받친…
- 698발해 건국 — 북쪽의 또 다른 나라정치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요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고구려 출신 대조영이 말갈족과 함께 이 통제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해 동모산 일대…
8세기
- 719발해 무왕의 팽창 — 산둥반도 공격정치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발해의 영토를 크게 넓혔는데, 당이 발해를 견제하려 흑수말갈과 손잡으려 하자 이에 반발해 장수 장문휴를 보내…
- 720헌화가와 해가 — 수로부인 설화문화『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조에 실린 두 노래의 무대다.
- 722성덕왕, 정전을 지급하다정책신라 중대 전성기를 이끈 성덕왕은 일반 백성(정남)에게 국가가 직접 토지(정전)를 지급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고, 그 대가로 조세와 역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
- 727혜초와 왕오천축국전문화신라 승려 혜초는 어린 나이에 당으로 건너가 인도 출신 승려에게 배운 뒤, 바닷길로 인도에 도착해 4년에 걸쳐 인도 다섯 지역(오천축국)과 중앙아시아 여러 나…
- 750김생 — 해동서성, 신라의 붓이 경지에 오르다문화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든이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았다는 김생은 왕희지에 견주어졌던 통일신라 최고의 서예가로,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 불렸다.
- 751불국사·석굴암 창건문화경덕왕 대의 재상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짓기 시작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 756발해 문왕의 체제 정비 — 상경 천도와 주자감 설치정책무왕의 아들 문왕은 아버지의 대당 강경책 대신 당과 화친하며 당의 3성6부제를 본떠 중앙 관제를 정비하고,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국립 교육기관 주자감을 설치했다.
- 760월명사와 제망매가 — 향가 문학의 정점문화향가 25수 가운데 문학적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10구체 사뇌가다.
- 765충담사 — 찬기파랑가와 안민가문화『삼국유사』 권2는 경덕왕이 3월 삼짇날 귀정문에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올리고 오던 승려 충담사를 만난 장면을 전한다.
- 788독서삼품과 — 활 대신 책으로 사람을 뽑으려 한 시도정책원성왕 4년(788), 신라는 국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읽은 책과 이해의 깊이에 따라 상·중·하 세 품으로 나누어 관리 임용에 참고하게 했다.
9세기
- 818발해 선왕의 전성기 — 해동성국정치발해 9대 왕 선왕(이름은 대인수)은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만주 동부와 연해주 일대의 말갈 부족들을 대부분 복속시켜 발해 역사상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 819발해의 통치체제 — 3성 6부와 독자성정책발해는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이면서도 명칭과 운영은 독자적으로 바꿨다.
- 822김헌창의 난 — 나라 이름을 새로 지은 반란785년 선덕왕이 죽었을 때 왕위 계승 서열 첫머리에 있던 사람은 김주원이었다.
- 828장보고, 청해진을 설치하다당에서 무장으로 활약하다
- 846장보고 피살과 왕위쟁탈전자신의 딸을 왕비로 세우려던 장보고의 시도가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그는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결국 자객 염장에게 암살당했다.
- 879처용 설화 — 개운포의 노래문화헌강왕이 개운포(울산)에 나들이 갔다
- 885최치원 — 한국 한문학의 출발문화최치원(857~908 이후)은 신라 말의 문신·문장가로 한국 한문학의 시조로 꼽힌다.
- 885최치원, 시무10조를 올리다문화12세에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 토벌 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최치원은, 귀국 후 진성여왕에게 국정 개혁을 담은 시무10조를 올렸다.
- 889원종·애노의 난 — 농민 봉기의 시작운동왕위쟁탈전으로 국가 재정이 바닥나자 진성여왕은 지방에 세금 독촉을 강화했는데, 계속된 흉년까지 겹치며 살길이 막막해진 상주 지역 농민들이 원종과 애노를 중심으…
- 900견훤, 후백제를 세우다정치신라 왕실의 권력다툼과 지방 통제력 상실 속에, 신라 장수 출신 견훤이 892년 무진주(광주)에서 세력을 일으킨 뒤 900년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
10세기
- 901궁예, 태봉(후고구려)을 세우다정치신라 왕족 출신이라 자처한 궁예는 891년 세력을 일으켜 강원·경기 일대를 장악한 뒤, 901년 송악에서 나라를 세워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에서 국호를 후고구려…
- 926발해 멸망정치거란(요)의 급격한 성장 속에, 내부 권력 다툼으로 국력이 약해진 발해는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아 상경성이 함락되며 멸망했다.
- 927공산 전투 — 견훤, 왕건을 크게 격파하다전쟁후백제 견훤이 신라 수도 금성(경주)을 급습해 경애왕을 자결하게 하고 왕비를 욕보이는 등 만행을 저지르자, 신라를 구원하러 나선 왕건은 견훤군과 공산(대구 팔…
- 930고창 전투 — 전세를 뒤집다전쟁공산 전투의 참패 이후 열세에 몰려 있던 왕건은 안동 지역 호족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고창(안동)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다시 맞붙어 이번에는 대승을…
- 935신라, 고려에 항복하다정치후백제 견훤의 잇따른 공격으로 국력이 극도로 약해진 신라는 더 이상 나라를 지탱할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