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 정벌

1479년 11월 · 평안 압록강 유역

명나라가 건주여진 정벌을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자, 성종은 어유소를 도원수로 삼아 압록강 유역의 여진 부락을 토벌하도록 했다. 세종 대 4군 6진 개척 이후에도 국경 지역의 여진족과의 긴장은 계속됐는데, 이 정벌은 명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동시에 북방 국경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런 크고 작은 정벌과 회유를 병행하는 대여진 정책은 조선 전기 내내 이어진 북방 경영의 기본 틀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을 지도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