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의 개혁 상소와 십만양병설

1583년 2월 · 한양

붕당의 갈등을 조정하려 애쓰던 이이는 공납의 폐단을 시정할 수미법(대동법의 원형이 되는 구상), 서얼 등용 확대 등 여러 개혁을 상소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국방 위기를 예견해 10만 명의 군사를 미리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십만양병설"은 후대에 널리 회자됐지만, 이 주장이 실제로 이이 생전에 문서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견이 있어 후대에 각색·강조됐을 가능성도 논의된다. 실제 채택 여부와 별개로, 국방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이 임진왜란 발발 이전부터 조정 일각에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을 지도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