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영언 편찬 — 최초의 가집과 사설시조

1728년 · 한양(서울)

1728년(영조 4) 중인 가객 김천택이 구전되거나 개인 문집에 흩어져 있던 시조 580수를 모아 엮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집이다. 정윤경의 서문, 본편 13항, 김천택의 자서, 마악노초의 발문으로 구성되며 곡목별·시대순 배열을 고려했다. 「하여가」·「단심가」를 비롯해 오늘날 알려진 시조 대부분이 여기 실려 전한다. 이후 김수장 『해동가요』(1755), 박효관·안민영 『가곡원류』(1876)와 함께 3대 가집으로 불리며, 18세기 중반~19세기 후반에 쏟아진 백 수십 종의 가집이 대개 김천택이 잡은 체계를 따랐다. 주목할 점은 편찬자가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 가객이라는 것이다 — 문학의 주도권이 이동하는 장면이다. 배경에는 17세기 후반부터의 상품화폐 경제 발달과 도시 성장이 있다. 여항(閭巷)을 중심으로 새 문화가 생겼고, 당시 사람들은 시조를 신번(新翻), 가곡을 신곡(新曲)이라 불렀다. 이 책에는 사설시조도 만횡청류(蔓橫淸類) 항목으로 실렸다. 사설시조는 초·중장이 6음보 이상 길어진 시조로, 종장의 3·5조만은 지키며 형식을 깨되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사물을 늘어놓고 대화를 옮기며 성·시집살이·지배층 조롱까지 다루어 사대부 시조에 없던 영역을 열었고 평민이 대거 참여했다. 김천택 자신은 정작 사설시조를 한 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평시조를 지었으며 내용도 강호산수·교훈이 많아 사대부 경향을 답습했다 — 남의 노래는 파격까지 모으면서 자기 노래는 정통을 지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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