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비 — 서양과 화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돌에 새기다

1871년 4월 · 한성 종로 등 전국

신미양요에서 미국 함대가 물러간 1871년, 흥선대원군은 서울 종로를 비롯한 전국의 길목에 비석을 세웠다. 큰 글씨 열두 자는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뜻이고, 옆의 작은 글씨는 "우리 만대 자손에게 경계한다.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이다. 병인양요와 오페르트 도굴 사건, 신미양요를 연달아 겪으며 굳어진 통상 거부 정책을 온 나라에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대원군이 물러나고 1876년 문호가 열렸으며, 1882년 임오군란 뒤 대원군이 청으로 끌려가자 척화비는 대부분 뽑히거나 땅에 묻혔다.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뒤에 다시 찾아낸 것이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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