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 — 무등산 의병장, 무고로 스러지다
무등산 자락에서 일어난 김덕령은 용력이 신화처럼 회자되던 젊은 의병장으로, 조정이 익호장군의 칭호를 내릴 만큼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몽학의 난이 진압된 뒤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무고에 걸려들었고, 선조의 친국 아래 여섯 차례 형문 끝에 스물아홉의 나이로 옥사했다 — 왕이 전공을 세운 의병장을 잠재적 위협으로 의심한 결과였다. 그의 억울한 죽음 이후 남도에서 의병 일으키기를 꺼리게 됐다는 실록의 기록은, 나라를 구한 이들을 나라가 어떻게 대했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남긴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