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연표
왕건의 고려 건국부터 조선 건국 직전까지입니다. 거란과 여진의 침입, 무신정변, 몽골과의 항쟁, 공민왕의 개혁, 위화도 회군 같은 사건을 연도순으로 봅니다.
918~1392 · 이 쪽 사건 145건 · 918~1392
10세기
- 918고려 건국 — 왕건 즉위정치후고구려(태봉)의 장수였던 왕건은 궁예의 폭정에 반발한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정변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 936후삼국 통일정치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935년 스스로 고려에 항복한 뒤, 왕건은 후백제와의 최후 결전에 나섰다.
- 940역분전 지급 — 고려 최초의 토지제도정책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940년, 통일 전쟁 과정에서 공을 세운 공신과 군인들에게 논공행상 성격으로 토지를 나눠주는 역분전을 시행했다.
- 943훈요십조를 남기다문화세상을 떠나기 직전, 왕건은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가르침인 훈요십조를 남겼다.
- 943혜종 즉위정치태조 왕건의 맏아들 무는 여러 호족 세력의 딸을 아내로 맞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외척 기반이 약했지만, 후삼국 통일 전쟁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혜…
- 945왕규의 난외척 호족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태조의 다른 아들)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혜종을 여러 차례 암살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 945정종 즉위정치왕규의 난을 진압하는 데 서경 세력의 군사력을 빌린 왕요는 그 여세를 몰아 정종으로 즉위했다.
- 947광군 설치정책북방에서 거란(요)이 세력을 키우며 압박해오자, 정종은 전국에서 30만 명에 이르는 예비군 성격의 광군을 조직해 거란의 침입에 대비했다.
- 949서경 천도 추진과 좌절정책서경 세력의 지지로 즉위한 정종은 개경 호족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계획을 추진해, 서경에 새 궁궐을 짓는 대규모 공사까지 벌였다.
- 956노비안검법 시행정책건국 초기 공을 세운 호족들은 전쟁 중 억울하게 노비가 된 양인을 많이 거두어 사병처럼 부리며 세력을 키웠다.
- 958과거제 시행정책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종은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제를 처음 도입했다.
- 960칭제건원과 공신 세력 숙청정치노비안검법과 과거제로 호족의 기반을 흔들어 놓은 광종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광덕·준풍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대외적으로도 고려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
- 975경종 즉위정치노비안검법과 과거제, 잇단 숙청으로 호족 세력을 강하게 억누르며 왕권을 다진 광종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경종이 뒤를 이었다.
- 976전시과 제정(시정전시과)경종은 관리에게 관직 등급에 따라 농지(전지)와 땔감을 얻는 임야(시지)에 대한 수조권을 지급하는 전시과를 처음 제정했다.
- 981성종 즉위정치경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사촌동생인 개령군이 성종으로 즉위했다.
- 982최승로의 시무28조 채택정책원로 유학자 최승로는 성종의 요청에 따라 태조부터 경종까지 다섯 왕의 치적을 평가하고, 앞으로 국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28개 항목으로 정리해 올렸다.
- 98312목 설치 — 지방관 파견 시작정책건국 이래 고려는 지방을 호족들의 자치에 맡겨두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지 않았는데,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처음…
- 992국자감 설치정책성종은 유교 경전과 학문을 가르쳐 관료를 양성하는 국립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개경에 설치했다.
- 993성종의 사회·경제 정책 — 의창·상평창과 건원중보정책성종은 태조 대의 빈민구제 기관 흑창을 확대 개편해 986년 의창을 설치하고, 993년에는 개경·서경과 12목에 곡식과 베 값이 내렸을 때 사들였다가 흉년에…
- 993거란 1차 침입과 서희의 담판전쟁거란(요)은 고려가 송과 친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소손녕이 이끄는 대군으로 침입했다.
- 9952성6부제 정비정책성종은 당·송의 관제를 참고해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의 2성, 그리고 그 아래 이·병·호·형·예·공의 6부로 이뤄진 중앙 관제를 정비했다.
- 9962군 6위와 주현군·주진군 — 고려의 군사제도정책고려의 중앙군은 왕궁을 지키는 응양군·용호군의 2군과, 수도와 국경 방비를 맡는 6위로 편성됐다.
- 996대간(대성) — 낭사와 어사대의 왕권 견제정책중서문하성의 하급 관리인 낭사와, 관리 감찰을 맡은 어사대는 함께 대간(대성)이라 불리며 고려 정치에서 독특한 견제 기능을 수행했다.
- 996도병마사와 식목도감 — 고려만의 독자적 회의기구정책고려는 당·송의 2성6부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중국에는 없는 독자적인 기구를 함께 운영했다.
- 997목종 즉위와 천추태후의 섭정정치성종의 뒤를 이어 조카인 목종이 18세로 즉위했는데, 생모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맡으며 실권을 크게 행사했다.
- 998목종의 개정전시과경종 대 시정전시과가 관직과 인품을 함께 기준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목종은 998년 인품이라는 주관적 기준을 없애고 오직 관직만을 기준으로 전·현직 관료에게…
11세기
- 1009강조의 정변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서북면도순검사 강조는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들어와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
- 1009현종 즉위정치태조의 손자였지만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 어린 시절 승려 생활까지 해야 했던 대량원군은, 강조의 정변으로 뜻밖에 왕위에 올라 현종이 됐다.
- 1010거란 2차 침입과 나주 피난전쟁거란 성종은 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것을 문책한다는 명분으로 4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침입했다.
- 1011양규 — 흥화진의 사수, 포로 3만을 구하고 지다전쟁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쳐들어온 2차 침입에서 양규는 흥화진을 끝까지 지켜냈고, 주력이 개경으로 남하하자 겨우 1,700의 병력으로 곽주를 기습 탈환해…
- 1011초조대장경 조판 시작문화거란의 2차 침입으로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지자, 현종은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대장경(불교 경전 전체)을 나무 판에 새기는 대규모 불사를 시작했다.
- 1011하공진 — 스스로 인질이 되어 왕을 구하다정치거란 대군이 개경을 함락하고 현종이 나주까지 몽진한 절체절명의 순간, 하공진은 스스로 적진에 들어가 "왕은 이미 멀리 갔다"며 거란 성종을 설득해 철군을 이끌…
- 1018거란 3차 침입과 귀주대첩전쟁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며 거란이 소배압을 앞세워 세 번째로 침입해오자,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아 맞섰다.
- 1029개경 나성 축조정책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는 뼈아픈 경험을 한 현종은, 도성을 둘러싸는 대규모 외성인 나성을 쌓아 방어력을 크게 강화했다.
- 1031덕종 즉위정치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 국정을 안정시킨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 덕종이 뒤를 이었다.
- 1033천리장성 축조 시작정책거란·여진 등 북방 세력의 거듭된 침입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덕종은 압록강 하구에서 동쪽 도련포(함경도)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장성을 쌓는 사업을 시작했다.
- 1034정종(靖宗) 즉위정치덕종이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동생이 뒤를 이어 정종(靖宗)으로 즉위했다.
- 1044천리장성 완성정책덕종 대에 시작된 천리장성 축조는 정종(靖宗) 대에 이르러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 도련포까지 이어지는 전 구간이 완성됐다.
- 1046문종 즉위정치현종의 셋째 아들로 형 정종(靖宗)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종은, 성종·현종 대에 다져진 제도적 기반과 천리장성 완성으로 확보된 대외적 안정을 물려받았다.
- 1050고려 여성의 지위 — 균분상속과 남귀여가혼문화고려 시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조선 후기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고 평가된다.
- 1050고려의 신분제 — 양천제와 중류층, 향·부곡·소정책고려는 자유민인 양인과 비자유민인 천민으로 크게 나뉘는 양천제를 기본으로 했다.
- 1055최충의 9재학당과 사학 12도문화문종 대의 관료 최충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사립 교육기관인 9재학당(문헌공도)을 세워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 1067흥왕사 창건문화문종은 12년에 걸친 대규모 공사 끝에 2,800여 칸에 이르는 거대한 사찰 흥왕사를 완공했다.
- 1069양전보수법 시행정책문종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실제 면적 측량 기준(보수)을 달리 적용하는 양전보수법을 제정해, 농지 조사와 세금 부과의 형평성을 높였다.
- 1071송과의 국교 재개외교거란과의 관계 때문에 한동안 소원했던 송나라와의 공식 외교 관계를, 문종은 거란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재개했다.
- 1076경정전시과 개정경종 대 인품까지 반영해 지급하던 전시과는 목종 대 관품 중심으로 한 차례 개정된 데 이어, 문종 대에 다시 한번 정비돼 오직 관품에 따라서만 토지를 지급하는…
- 1076관제 정비 완성 — 문산계·무산계 체계화정책문종은 성종 대 정비된 2성6부 체제 위에, 문신과 무신 각각에 별도의 품계 체계(문산계·무산계)를 정교하게 다듬어 관료 서열 체계를 완성했다.
- 1083순종 즉위와 3개월 만의 죽음정치37년간 재위하며 고려의 최전성기를 이끈 문종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 순종이 즉위했지만, 원래도 병약했던 그는 즉위한 지 석 달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 1083선종 즉위정치형 순종이 3개월 만에 급서하자 문종의 둘째 아들이 선종으로 즉위했다.
- 1091교장(속장경) 편찬 — 대각국사 의천문화문종의 넷째 아들로 11세에 출가한 의천은 송에 유학해 천태종 교리를 익히고 돌아온 뒤,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해 동아시아 각지에 흩어진 불교 경전의 주석서…
- 1094선종의 죽음과 어린 헌종의 즉위정치선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11세의 어린 아들이 헌종으로 즉위했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병약해 국정을 제대로 살피기 어려운 처지였다.
- 1095이자의의 난과 헌종 폐위헌종의 외숙부 이자의는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왕자(헌종의 이복동생)를 왕위에 앉히려 군사를 동원하려 했으나, 왕실 종친인 계림공(숙종)이 먼저 손을 써 이자의…
- 1095숙종 즉위정치이자의의 난을 진압하고 실권을 잡은 계림공은 조카 헌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 숙종으로 즉위했다.
- 1100벽란도와 국제무역 — 코리아라는 이름의 유래개경과 가까운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는 고려 전기 국제 무역항으로 크게 번성했다.
12세기
- 1101대각국사 의천의 죽음문화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출가해 천태종을 개창하고 교장(속장경) 편찬을 주도했던 대각국사 의천이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 1102해동통보 주조숙종은 동생인 의천의 건의를 받아들여 주전관을 설치하고 해동통보를 비롯한 동전을 대량으로 주조해 유통시켰다.
- 1104남경(한양) 설치정책풍수도참 사상이 유행하던 당시, 숙종은 지금의 서울 지역에 남경을 설치해 개경·서경과 더불어 고려의 3경 체제를 완성했다.
- 1104별무반 창설정책북방 여진족이 기병 중심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고려 국경을 위협하자, 윤관은 기존의 보병 위주 군제로는 이를 막기 어렵다고 판단해 기병 중심의 별무반 창설을 건…
- 1105예종 즉위정치숙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예종은 아버지가 준비해 둔 별무반을 실전에 투입해 여진 정벌을 단행하는 한편, 학문과 문화 진흥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 1107여진 정벌과 동북 9성 개척전쟁별무반을 이끈 윤관은 17만 대군으로 함경도 일대의 여진족을 대대적으로 정벌하고, 새로 확보한 영토에 동북 9성을 쌓아 고려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 1109구제도감 설치정책전염병과 흉년으로 백성들이 고통받자, 예종은 병자를 치료하고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는 임시 기구인 구제도감을 설치했다.
- 1109국학(국자감) 진흥 — 7재 설치정책예종은 국자감 안에 유교 경전별로 전문화된 7개의 강좌(7재)를 설치해 관학 교육을 크게 강화했다.
- 1109동북 9성 반환정책9성을 방어하는 데 막대한 병력과 물자가 지속적으로 소모되고 여진의 반격이 끊이지 않자, 예종은 결국 여진의 조공 서약을 받는 조건으로 9성에서 철수하고 이…
- 1122인종 즉위와 이자겸의 전횡정치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기도 한 이자겸의 후원으로 14세의 인종이 즉위했다.
- 1126척준경 — 고려 최강의 무인, 두 번 역사를 바꾸다여진 정벌에서 성벽을 홀로 넘어 적장을 베는 무용으로 이름을 떨친 척준경은 별무반이 배출한 고려 최강의 무인이었다.
- 1126이자겸의 난이자겸의 전횡에 위협을 느낀 인종은 측근들과 함께 그를 제거하려 했으나 거사가 실패하면서, 오히려 이자겸과 그의 심복 척준경이 궁궐에 불을 지르고 왕을 사실상…
- 1126금에 대한 사대 외교 채택외교고려가 반환한 동북 9성 지역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급속히 성장해 거란(요)마저 멸망시키고 군신 관계를 요구해오자, 이자겸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실리를…
- 1135묘청의 서경천도운동(묘청의 난)운동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불타는 등 개경의 지기(땅의 기운)가 쇠했다고 본 승려 묘청은,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가 부흥하고 금나라마저 신하로 삼을 수 있다는 풍…
- 1145삼국사기 편찬문화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은 인종의 명을 받아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역사를 정리한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 1146의종 즉위정치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라는 두 차례 큰 정변을 겪은 인종의 뒤를 이어 맏아들 의종이 즉위했다.
- 1150고려청자의 발달 — 순청자에서 상감청자로문화고려는 신라·발해의 전통 기술을 이어받고 송의 자기 기술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고려청자를 발전시켰다.
- 1157문신 우대와 잦은 연회·유흥문화의종은 문신들과 함께 곳곳에 정자와 누각을 짓고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연회를 자주 열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무신들은 문신의 시중을 들거나 경호를 서는 역할에…
- 1170무신정변 — 정중부의 난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천시하는 풍조에 불만이 쌓인 데다, 의종이 향락에 빠져 문신들과 놀이만 즐기며 무신을 모욕하는 일이 반복되자,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 1170보현원 사건 — 무신정변의 도화선의종이 문신들과 보현원으로 놀이를 나간 자리에서, 젊은 문신 한뢰가 나이 든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며 모욕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
- 1174조위총의 난전쟁무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정중부 일파에 반발해, 서경유수 조위총은 정중부 타도를 명분으로 서북 지역 군사를 모아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 1176망이·망소이의 난운동일반 군현보다
- 1179경대승의 집권과 도방 설치젊은 장군 경대승은 정중부 일파의 전횡에 반발해 그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다.
- 1193이규보 — 동명왕편, 무신의 시대에 서사시를 쓰다문화이규보는 스물여섯에 고구려 시조의 일대기를 노래한 장편 서사시 동명왕편을 지어, 중국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우리 역사도 성인의 역사"라는 자부심을 문학으로…
- 1193이규보와 동명왕편 — 고려 한문학문화이규보(1168~1241)는 고려 중기의 문신·문장가로 호는 백운거사, 술·시·거문고를 좋아해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불렸다.
- 1196최충헌의 집권 — 이의민 제거경대승 사후 정권을 잡은 이의민은 천민 출신으로 왕까지 능멸할 만큼 전횡을 일삼았는데, 최충헌 형제는 이의민 부자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곧이어 명종까지…
- 1197신종 즉위정치최충헌이 명종을 폐위시키고 그 동생을 신종으로 옹립하면서, 신종은 처음부터 최충헌의 뜻에 따라 즉위한 명목상의 왕에 불과했다.
- 1198만적의 난 — 노비해방운동운동최충헌의 사노비였던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며 개경의 노비들을 모아 주인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운 뒤 스스로 관직에 오르자는 신분…
- 1200무신집권기의 불교 결사운동 — 수선사와 백련사문화무신정권기 불교계의 세속화와 타락을 비판하며, 승려 지눌은 참선을 통한 깨달음(선)과 경전 공부(교)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 단번에 깨달아도 이후 꾸…
- 1200지눌 — 정혜결사, 타락한 불교를 산으로 데려가다문화권력과 결탁해 타락해가던 개경 불교를 등지고, 지눌은 뜻을 같이하는 수행자들과 정혜결사를 맺어 조계산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에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근본…
13세기
- 1204희종 즉위정치신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희종 역시 최충헌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
- 1211강종 즉위정치희종이 폐위된 뒤 명종의 아들이 최충헌에 의해 강종으로 옹립됐다.
- 1211희종의 최충헌 암살 시도와 폐위최충헌의 전횡에 위협을 느낀 희종은 내시들과 짜고 최충헌을 궁궐로 유인해 암살하려 했으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 1216한림별곡 — 경기체가의 시작문화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학자들(한림제유)이 함께 지은 8장 노래로, 현전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 1218강동성 전투 — 김취려와 몽골의 첫 접촉전쟁몽골에 쫓겨 온 거란 유민들이 고려 영내로 밀려들어와 강동성에 웅거하자, 고려 장수 김취려는 몽골·동진국 군대와 연합해 이들을 포위 공격했다.
- 1219최우 집권4대에 걸친 최씨 정권의 기틀을 다진 최충헌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최우가 별다른 저항 없이 권력을 물려받았다.
- 1231몽골의 1차 침입전쟁몽골은 자국 사신 저고여가 고려에서 피살된 사건을 구실로 대군을 보내 고려를 침공했다.
- 1232삼별초 창설단체최우는 도둑을 막기 위해 조직한 야별초를 좌별초·우별초로 늘리고, 몽골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신의군을 더해 삼별초를 편성했다.
- 1232강화 천도정책몽골과의 굴욕적인 강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최우는 몽골 기병이 바다를 건너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조정을 통째로 강화도로 옮기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 1232처인성 전투 — 살리타 사살전쟁강화천도에 격분한 몽골이 재차 침입해오자, 승려 출신 김윤후는 처인성에서 부곡민들과 함께 항전하며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화살로 쏘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 1236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조판문화현종 대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1차 침입 때 불타 없어지자, 최우는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대장경을 다시 새기는 대규모 불사를…
- 1253충주성 전투 — 노비 문서를 불태운 70일전쟁몽골의 다섯 번째 침입 때인 1253년, 예쿠가 이끄는 몽골군이 충주성을 에워쌌다.
- 1259몽골과의 강화 성립외교30년 가까이 이어진 대몽항쟁으로 국토가 극도로 피폐해지자, 고려 조정 내에서 몽골과의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었다.
- 1259원종 즉위와 무신정권의 쇠퇴정치고종의 뒤를 이어 원종이 즉위할 무렵, 최씨 정권은 이미 최의가 김준에게 살해되면서 4대 60여 년 만에 막을 내린 상태였다.
- 1270개경 환도정책몽골과의 강화 이후 몽골은 지속적으로 개경 환도를 요구했는데, 무신정권 잔여 세력은 이에 반발했지만 원종은 왕권 회복을 위해 결국 몽골의 요구를 받아들여 39…
- 1270삼별초의 난전쟁개경 환도 결정에 반발한 삼별초는 배중손을 지도자로 삼아 왕족을 새 왕으로 추대하고 독자적인 정부를 세운 뒤,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몽골에 맞선 항쟁을 이어갔다.
- 1274충렬왕 즉위 — 원의 부마국화정치원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충렬왕은 세자 시절 원나라 쿠빌라이의 딸과 혼인했는데, 이로써 고려는 대대로 원 황실의 사위 나라(부마국)가 되는 특수한 관계에 들어…
- 1274제1차 일본 원정전쟁원은 일본 정벌을 위해 고려에 군선 건조와 병력·군량 제공을 강요했고, 고려군과 몽골군 연합 함대는 마산 합포를 출발해 쓰시마·이키를 거쳐 규슈에 상륙했다.
- 1275응방 설치와 폐해정책매사냥을 즐기던 원 황실에 매를 진상하기 위해 고려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어 전국에서 매를 잡아 바치게 했는데, 응방에 소속된 자들이 그 권세를 등에 업고 백…
- 1280고려가요 — 민간의 노래가 궁중으로문화고려가요(속요)는 민간에서 구전되던 노래가 궁중 속악으로 흡수된 갈래다.
- 1280동동 — 현전 최고(最古)의 월령체 노래문화『악학궤범』에 전하는 13연 노래로, 서사 한 연에 이어 정월부터 섣달까지 열두 달을 차례로 노래한다.
- 1280서경별곡 — 대동강의 이별문화서경(평양) 대동강을 무대로 한 이별 노래로 『악장가사』·『대악후보』·『시용향악보』에 전한다.
- 1280청산별곡 — 밀려난 사람들의 노래문화『악장가사』·『악학편고』·『시용향악보』에 전하는 8연 노래로, 「서경별곡」과 함께 고려가요 중 문학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 1280정동행성 설치단체원은 일본 원정을 지휘하기 위해 개경에 정동행성이라는 관청을 설치했는데, 정작 원정이 실패한 뒤에도 이 기구는 폐지되지 않고 원이 고려 내정에 간섭하는 상설…
- 1281무신·원간섭기의 자주적 역사서술 — 동명왕편·삼국유사·제왕운기문화무신정변으로 문벌 귀족이 몰락하고 이어 몽골의 간섭까지 받게 되면서,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고구려·고조선을 우리 역사의 뿌리로 강조하는 자주적 역사…
- 1281제2차 일본 원정전쟁1차 원정 실패에도 정벌 야욕을 버리지 않은 원은 훨씬 더 큰 규모의 군세로 재차 일본 원정을 감행했다.
- 1285몽골풍의 유행 — 변발·호복운동원 공주와의 혼인, 원 조정과의 빈번한 왕래가 이어지면서 고려 왕실과 지배층 사이에서 몽골식 머리(변발)와 복식(호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 1290안향,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소개하다문화충렬왕을 따라 원에 다녀온 안향은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소개했다.
- 1298충선왕 즉위와 개혁 시도(1차)정책충렬왕이 잠시 왕위를 물려주면서 즉위한 충선왕은 곧바로 관제 개혁과 권세가의 토지 겸병을 억제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14세기
- 1308충선왕 복위와 전민변정 재추진정책충렬왕이 세상을 떠나자 충선왕은 10년 만에 다시 왕위에 올라, 첫 즉위 때 좌절됐던 권세가의 불법적인 토지·노비 겸병을 바로잡는 전민변정 사업을 재추진했다.
- 1313충숙왕 즉위와 심왕 옹립 책동정치충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충숙왕은 재위 내내 원 황실의 부마이자 요동 지역을 봉지로 받은 심왕(충선왕의 조카 왕고)이 고려 왕위까지 노리는 정치 공작에 시달…
- 1314만권당 설치 — 원-고려 학술 교류문화퇴위 후에도 원의 수도 연경에 머물던 충선왕은 자신의 저택에 만권당이라는 서재 겸 학술 기구를 세우고, 원의 저명한 학자들과 고려의 이제현 등을 불러 함께 학…
- 1314이제현 — 만권당의 유학자, 원 제국 한복판의 고려 지성문화충선왕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세운 서재 만권당에서, 스물여덟의 이제현은 조맹부 등 원 제국 최고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고려 지성의 수준을 제국의 한복판에서 증명했다.
- 1330충혜왕 즉위와 방탕한 행실정치충숙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충혜왕은 사냥과 연회, 여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심지어 서모(계모)를 겁탈하는 등 패륜적인 행실로 원 조정에까지 악명이…
- 1339충숙왕의 죽음정치아들 충혜왕에게 잠시 양위했다가 그의 실정으로 다시 복위하는 등 굴곡진 재위를 이어가던 충숙왕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 1343충혜왕의 원 소환과 유배 중 죽음정치충혜왕의 폭정과 방탕이 도를 넘자, 원은 마침내 사신을 보내 그를 직접 결박해 원으로 압송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했다.
- 1344충목왕 즉위 — 8세의 어린 왕정치충혜왕이 유배 도중 세상을 떠나자 겨우 8세였던 아들이 충목왕으로 즉위했다.
- 1347정치도감 설치 — 폐정 개혁 시도정책원 순제의 지시와 고려 개혁 세력의 요청이 맞물려, 조정은 권세가들의 불법적인 토지 겸병과 부정을 조사·시정하는 정치도감을 설치했다.
- 1349충정왕 즉위정치충목왕이 후사 없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이복동생인 충정왕이 역시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 1350왜구 침입의 본격화(경인년 왜구)전쟁일본 국내의 정치적 혼란(남북조 시대)으로 통제를 벗어난 무장 집단들이 왜구가 되어 고려 남해안을 본격적으로 노략질하기 시작했는데, 경인년(1350)의 침입을…
- 1351충정왕 폐위와 공민왕 즉위정치왜구 침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국정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원은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강릉대군(공민왕)을 새 왕으로 세웠다.
- 1356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치원나라 세력이 약해지는 국제정세를 기회로 삼아, 공민왕은 원의 부마국 지위를 유지시키며 권세를 누려온 부원배 기철 일파를 숙청하고, 원이 강요했던 관제와 몽골…
- 1361홍건적의 침입 — 개경 함락과 공민왕의 몽진전쟁원나라 말기 중국에서 일어난 반란군 홍건적이 원군에 쫓겨 두 차례 고려로 밀려들었다.
- 1363문익점의 목화 전래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온 문익점이 목화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고향인 진주 강성현(지금의 산청 단성)에서 재배를 시도했다.
- 1365신돈의 등용과 전민변정도감정책개혁을 함께할 세력 기반이 마땅치 않았던 공민왕은 기존 권문세족과 얽히지 않은 승려 신돈을 파격적으로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맡겼다.
- 1374우왕 즉위정치공민왕이 자제위 소속 신하들에게 시해되자, 권신 이인임의 주도로 공민왕과 신돈의 시비(侍婢)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어린 우왕이 왕위에 올랐다.
- 1374공민왕의 시해신돈이 처형된 뒤 왕비 노국대장공주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실의에 빠진 공민왕은 정사를 멀리하고, 미소년들로 구성된 근위 조직 자제위를 곁에 두며 기이한 행보…
- 1376최영의 홍산대첩전쟁고려 말 왜구는 해안을 넘어 내륙 깊숙이까지 침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노장 최영은 부여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격파하며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 1377직지심체요절 —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문화고려는 발달한 목판 인쇄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 1380최무선의 화약 무기 개발과 진포대첩과학화약 제조법이 외국(원·명)의 기술 독점으로 국내에 전해지지 않자, 최무선은 오랜 연구 끝에 스스로 화약 제조법을 터득하고 조정을 설득해 화통도감을 설치했다.
- 1380이성계의 황산대첩전쟁진포대첩에서 배를 잃고 퇴로가 막힌 왜구 잔당이 내륙으로 도망쳐 노략질을 이어가자, 이성계는 남원 황산에서 이들을 추격해 왜구 지휘관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 죽…
- 1388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와 요동정벌 결정정치명나라가 원이 지배했던 철령(강원도 북부) 이북 땅을 자신들이 직접 관할하겠다며 철령위 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오자, 최영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오히려…
- 1388위화도 회군요동정벌군을 이끌고 압록강 하류 위화도까지 나아간 이성계는 장마로 강물이 불어 도하가 어렵고 병사들 사이에 전염병까지 돌자, 애초에 반대했던 요동정벌을 강행할…
- 1388창왕 즉위정치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폐위한 이성계 세력은, 아직 왕조 자체를 무너뜨릴 명분과 준비가 충분치 않았기에 우왕의 9세 아들을 창왕으로 옹립해 고려 왕실의 틀은…
- 1388전제개혁 논의 — 사전 혁파 주장정책고려 말 권문세족들은 불법적으로 광대한 토지(사전)를 겸병해 국가 재정을 좀먹고 있었는데, 조준·정도전 등 급진 개혁파 신진사대부는 이런 사전을 모두 몰수해…
- 1389박위 — 쓰시마를 치다, 왜구의 소굴 정벌전쟁수십 년간 고려를 유린한 왜구의 근거지를 뿌리 뽑기 위해,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쓰시마를 정벌해 적선 300여 척을 불태우고 끌려갔던 고…
- 1389창왕 폐위 — 폐가입진이성계 세력은 우왕과 창왕이 실은 공민왕의 혈통이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는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 논리를 내세워, 창왕마저 폐위시키고 강화…
- 1390길재 —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마지막 고려인문화이성계의 새 왕조가 눈앞에 다가오자 길재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선산으로 내려가, 조선 개국 후 태종이 벼슬을 내려도 "여자에게 두 남편이 없듯 신하에게 두 임…
- 1391과전법 실시정책창왕 대부터 논의되던 전제개혁은 마침내 결실을 맺어, 기존의 불법적인 대토지(사전)를 모두 몰수하고 경기 지역에 한해 현직·전직 관리에게 토지의 수조권을 새로…
- 1392정몽주, 선죽교에서 피살되다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려 한 온건 개혁파의 대표 정몽주는 이성계 세력이 새 왕조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눈치채고 이를 막으려 했다.
- 1392고려 멸망정치정몽주 제거로 마지막 장애물이 사라지자, 이성계 세력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