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정복의 길을 열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가도입명)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2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동원해 부산으로 침공했다. 조선의 명장으로 꼽히던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맞섰지만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크게 패했고, 이 패배로 방어선이 무너지며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했다. 하지만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한산도대첩 등에서 연승하며 일본의 보급선을 차단했다. 명나라 참전과 전국 각지의 의병 봉기가 더해지며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이어졌고, 1598년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직후 도요토미가 사망하며 일본군이 철수해 7년 전쟁이 끝났다.
왜 일어났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을 치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 했다. 조선은 통신사가 보고를 놓고 엇갈리게 말할 만큼 침략 가능성을 낮게 보았고, 200년 평화로 군대는 약해져 있었다.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전국시대를 거친 병사들이었다.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하자 선조는 20일 만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갔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순신의 수군이 남해에서 보급선을 끊고, 곽재우·조헌·휴정의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명이 참전해 평양을 되찾았다. 전쟁은 7년을 끌고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끝났다. 조선은 인구와 농지가 크게 줄었고 경복궁이 불탔으며, 수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명은 국력을 소모해 뒤에 무너졌고,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섰다. 동아시아 세 나라가 모두 바뀐 전쟁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진왜란
- 위키백과 임진왜란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이 든 루트
이 사건은 조선 지도(1392~1875)의 사건입니다 — 조선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