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 윤씨 사사
성종의 계비였던 윤씨는 질투가 심하다는 이유로 왕의 얼굴에 상처를 낸 일 등이 문제 되어 폐서인됐고, 이후에도 행실을 고치지 않는다는 대신들의 상소가 이어지자 결국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이때 폐비 윤씨의 아들이 훗날 왕위에 오르는 연산군이었는데, 즉위 후 생모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알게 된 그는 이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훗날 갑자사화에서 잔혹하게 숙청한다. 조정 신하들의 건의로 이뤄진 이 처분은 20년 가까이 지난 뒤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화로 되돌아오는 씨앗이 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폐비 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