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의 옥
이시애의 난 진압에 큰 공을 세우며 20대에 병조판서까지 오른 남이는 세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훈구 대신들의 견제를 받아 병조판서에서 밀려났다. 그의 출세를 시기하던 유자광은 남이가 지은 시의 한 구절을 역모의 증거로 몰아 고변했고, 예종은 즉위 초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를 서둘러 제거하려는 뜻에서 이를 받아들여 남이를 처형했다. 이 사건은 훈구 공신 세력이 신진 무장 세력을 견제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됐고, 남이의 역모 혐의는 후대에도 무고였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