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 삼전도의 굴욕

1636년 11월 · 경기 남한산성

국호를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는 조선이 신하의 예를 거부하자 12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침공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5일간 항전했지만 식량이 끊기고 강화도까지 함락되자 결국 성을 나와 항복했다. 인조는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 의례(삼궤구고두)를 치렀고, 이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불리며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기록됐다. 이 전쟁으로 조선은 청의 신하국이 됐고, 소현세자를 포함한 왕자와 수만 명의 백성이 청에 끌려갔다.

왜 일어났나

인조반정으로 들어선 조정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버리고 명을 받들며 후금을 오랑캐로 대했다. 1627년 정묘호란으로 형제 관계를 맺었으나 조선은 이를 지키지 않았고, 1636년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며 군신 관계를 요구하자 조정은 거부했다. 그해 12월 청 태종이 12만 군대로 쳐들어와 열흘 만에 한양에 닿았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무엇이 달라졌나

47일 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끌려갔고, 수십만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다. 조선은 청의 신하가 되었으나 속으로는 명을 그리워하며 북벌을 말했고, 이 정신적 굴욕이 조선 후기 사상의 한 축이 되었다. 삼전도비는 지금도 서울 잠실에 서 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조선 지도(1392~1875)의 사건입니다 — 조선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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