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

1504년 3월 20일 · 한양

생모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경위를 자세히 알게 된 연산군은, 당시 이를 주도하거나 방관했던 훈구·사림 대신들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이미 죽은 한명회 등의 시신을 부관참시하고, 살아 있는 대신들은 사형에 처하거나 유배 보냈으며 그 가족까지 연좌시켰다. 무오사화가 사림에 집중된 숙청이었다면 갑자사화는 훈구파까지 아우른 무차별 보복으로, 이 두 사화를 거치며 조정의 견제 세력이 사실상 궤멸돼 연산군의 폭정을 막을 이가 없게 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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