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 혁파
왕자의 난이 두 차례나 벌어질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왕족과 공신들이 저마다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자 신분으로 실권을 쥔 이방원은 즉위 직전 왕족과 신하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던 사병을 모두 국가의 군사 체계(삼군부)로 흡수시켰다. 이 조치로 개인 무력을 동원해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차단됐고, 이는 조선 왕조 내내 왕권과 국가 군사력을 안정시키는 토대가 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병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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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조선 지도(1392~1875)의 사건입니다 — 조선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