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두 강화 이거 — 강화학파의 시작
예순한 살의 정제두가 강화도로 옮겨 갔다. 그는 조선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양명학을 평생 붙든 인물이었다. 이황이 전습록논변으로 양명학을 비판한 이후, 마음이 곧 이치라는 심즉리는 객관적 도덕 기준을 무너뜨린다 하여 배척됐다. 정제두는 그 비판을 알면서도 지행합일이야말로 말과 행동이 갈라진 당대 학풍을 겨눌 수 있는 도구라고 보았다. 그는 자기 학문을 공개적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저술을 널리 퍼뜨리지도 않았다. 대신 혈연과 혼인으로 이어진 좁은 범위에서 가학으로 전했다. 그렇게 이광사·이긍익·정동유를 거쳐 당의통략을 쓴 이건창까지 2백 년 가까이 이어졌다 — 정통이 아닌 사상이 조선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제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화학파
- 하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