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탄압과 한글 사용 금지

1504년 5월 · 한양

두 차례 사화 이후에도 연산군에 대한 비판이 언문(한글) 투서 형태로 나타나자, 그는 아예 한글 사용과 교육을 금지하고 관련 서적을 불태우게 했다. 성종 대에 정비된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언론 기능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신하들이 왕의 잘못을 지적할 통로 자체를 봉쇄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문자가 그 후손에 의해 탄압받는 역설적인 상황은, 연산군의 통치가 정치적 폭압을 넘어 문화적 퇴행으로까지 치달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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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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