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정조 대에는 비교적 느슨하게 관리되던 천주교(서학)에 대해, 정순왕후는 이를 반대 세력(시파·남인)을 정치적으로 숙청하는 명분으로 적극 활용했다. 조선 최초의 영세 신자 이승훈과 정약용의 형 정약종을 비롯한 수백 명의 신자가 처형되거나 유배됐고, 이 사건으로 실학자 정약용도 오랜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종교 탄압이면서 동시에 정조가 등용했던 개혁 세력을 뿌리 뽑는 정치 숙청의 성격이 강했던 이 사건은, 이후 세도정치기 내내 반복되는 천주교 박해의 첫 사례가 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유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