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
위훈삭제로 궁지에 몰린 훈구파 남곤·심정 등은 궁궐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는 글자를 새겨 벌레가 갉아먹게 한 뒤 이를 조광조의 역모 증거로 몰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중종은 이미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에, 훈구파의 탄핵을 받아들여 조광조를 유배 보낸 뒤 곧 사약을 내렸다. 조광조와 뜻을 함께한 사림 인사들도 대거 조정에서 쫓겨나면서, 성종·중종 초를 거치며 성장해 온 사림의 급진 개혁 노선은 큰 좌절을 겪었다.
왜 일어났나
중종은 반정으로 왕이 되어 공신들에게 눌려 있었고, 조광조를 불러 새 정치를 맡겼다. 조광조는 현량과로 사림을 뽑고 소격서를 없앴으며, 반정 공신 76명의 공훈을 깎자고 했다. 4년 만에 훈구의 뿌리를 건드린 것이다. 훈구 세력은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이라 써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는 말이 전할 만큼 왕의 의심을 부추겼고, 중종도 급진적인 개혁에 지쳐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조광조는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고 사림 수십 명이 쫓겨났다. 개혁은 중단되었지만 사림은 지방 서원에서 힘을 키워 선조 때 조정을 차지했고, 그때 조광조는 문묘에 배향되었다. 무오·갑자·기묘·을사 네 사화를 겪으며 사림은 훈구를 이겼고, 이후 사림끼리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것이 붕당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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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묘사화
- 위키백과 기묘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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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조선 지도(1392~1875)의 사건입니다 — 조선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