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 사사 — 주자를 고쳐 쓴 사문난적

1680년 5월 · 한양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무너지면서 윤휴도 사약을 받았다. 그가 사문난적, 곧 유학을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불린 이유는 중용을 주자의 주석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누고 풀었기 때문이다.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겠는가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조선에서 주자의 해석은 학설이 아니라 체제의 근거였고, 특히 병자호란 이후 명이 망한 지금 중화의 정통을 잇는 것은 조선뿐이라는 자의식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주자를 흔드는 것은 그 마지막 자존까지 흔드는 일이었다. 그는 학문에만 머물지 않고 북벌을 실제로 추진하자며 병거 제작과 지패법 같은 구체적 제도 개혁안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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