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 — 민간의 노래가 궁중으로

1280년 · 개경(개성)

고려가요(속요)는 민간에서 구전되던 노래가 궁중 속악으로 흡수된 갈래다. 대부분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으며 표시된 연대는 궁중 정착 시기의 추정일 뿐이다. 우리말로 적힌 것은 『악학궤범』(1493)·『악장가사』·『시용향악보』에 14편, 한역된 것은 『고려사』 악지·『익재난고』·『급암선생시집』 등에 14편이 남아 모두 28편 정도가 전한다. 주목할 점은 이 노래들이 고려가 아니라 조선에서, 그것도 훈민정음으로 기록됐다는 것이다 — 향가가 향찰에 갇혀 20세기까지 읽히지 못한 것과 달리 고려가요는 옛사람이 부른 소리에 상당히 가깝게 읽힌다. 형식은 연장체(여러 연이 이어짐), 후렴, 3음보 율격이 특징이다. 후렴은 대개 뜻 없는 소리인데 「가시리」의 \"위 증즐가 태평성대\"처럼 이별 노래에 태평성대 송축이 붙는 어긋남이 나타난다. 민간의 노래가 궁중으로 편입되며 격식에 맞는 후렴이 덧붙은 흔적으로 읽힌다. 조선 유학자들이 이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 배척해 삭제했다는 통념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반론도 제기된다 — 고려가요를 기록해 남긴 이들이 바로 그 조선 성리학자들이고, 남녀상열지사는 남녀의 애정을 다룬 노래라는 뜻이지 성애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실전 작품이 많은 것은 검열이 아니라 향가처럼 세월이 지나며 자연히 사라진 결과라는 것이다. 성종 때 「서경별곡」이 산제(刪除) 대상으로 거론되고 중종 13년(1518) 「정읍사」가 폐지된 기록은 남아 있어 논쟁은 계속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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