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3차 침입과 귀주대첩

1018년 12월 · 평북 귀주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며 거란이 소배압을 앞세워 세 번째로 침입해오자,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아 맞섰다. 강감찬은 흥화진에서 강물을 막았다가 터뜨려 거란군에 큰 타격을 입힌 데 이어,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에서 완전히 포위해 섬멸하다시피 했다(귀주대첩). 이 대승으로 거란은 이후 고려를 다시는 대규모로 침공하지 못했고, 고려·거란·송 사이에 세력 균형이 자리 잡으며 동아시아에 오랜 평화가 찾아왔다.

왜 일어났나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달라며 1010년 2차 침입 뒤에도 계속 압박했고, 1018년 소배압이 10만 군대로 세 번째로 쳐들어왔다. 개경까지 내려갔다가 성과 없이 돌아가는 길에 강감찬이 귀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흥화진에서 강물을 막았다 터뜨린 전술, 김종현의 기병이 때맞춰 합류한 것이 승리의 조건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10만 가운데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이었다. 거란은 다시는 고려를 넘보지 못했고 1019년 화친이 맺어져 고려·거란·송 세 나라의 세력 균형이 100년 넘게 이어졌다. 고려는 개경에 나성을 쌓고 1044년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이 전쟁의 기록은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 있고, 최근에는 드라마로 다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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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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