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

1388년 5월 22일 · 평안 위화도(압록강)

요동정벌군을 이끌고 압록강 하류 위화도까지 나아간 이성계는 장마로 강물이 불어 도하가 어렵고 병사들 사이에 전염병까지 돌자, 애초에 반대했던 요동정벌을 강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회군했다. 이성계는 개경으로 진군해 최영을 제거하고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우왕을 폐위해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그 아들 창왕을 새 왕으로 세웠다. 군사를 돌려 왕명에 반기를 든 이 사건으로 고려의 권력은 사실상 이성계 세력에게 넘어갔고, 이는 4년 뒤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왜 일어났나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은 요동을 치기로 했다.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 여름에 군사를 내는 것, 그 틈에 왜구가 쳐들어올 것, 장마에 활이 풀리고 병이 도는 것을 들어 반대했으나 출병했다. 압록강 위화도에서 큰비에 발이 묶이자 그는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향했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성계는 최영을 죽이고 우왕을 폐했으며 창왕과 공양왕을 세웠다가 다시 폐했다. 4년 뒤 1392년 스스로 왕이 되어 조선을 열었다. 회군 뒤 정도전·조준이 추진한 과전법이 새 왕조의 경제 기반이 되었다. 위화도 회군은 쿠데타인 동시에 새 왕조의 출발점이라, 고려 쪽에서 보면 반역이고 조선 쪽에서 보면 개국의 첫 장이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고려 지도(918~1392)의 사건입니다 — 고려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이 사건을 지도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