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천도
몽골과의 굴욕적인 강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최우는 몽골 기병이 바다를 건너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조정을 통째로 강화도로 옮기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왕과 관료, 군대까지 모두 강화도로 옮겨가면서도 육지의 백성들은 그대로 남아 몽골의 반복된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이는 최씨 정권이 백성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우선했다는 비판을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39년간 이어진 강화도 항쟁은 고려가 몽골에 끝까지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자주성의 상징으로 남았다.
왜 일어났나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뒤 최우는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기로 했다. 몽골군은 말을 타고 육지에서는 무적이었지만 배가 없었고, 강화도는 개경에서 가깝고 조운선이 닿는 섬이었다. 왕과 신하 대부분이 반대했으나 최우는 자기 집으로 백관을 불러 천도를 결정했다. 항전이자 동시에 최씨 정권을 지키려는 선택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정부는 39년 동안 섬에 있었고, 그동안 몽골은 여섯 차례 쳐들어와 육지를 짓밟았다. 황룡사 9층탑과 초조대장경이 불탔고, 백성은 산성과 섬으로 들어가 버텼다. 팔만대장경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1258년 최씨 정권이 무너지고 1259년 강화가 이루어졌으며,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갈 때 삼별초가 이를 거부하고 진도·제주로 내려가 3년을 더 싸웠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화천도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이 든 루트
이 사건은 고려 지도(918~1392)의 사건입니다 — 고려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