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의 9재학당과 사학 12도
문종 대의 관료 최충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사립 교육기관인 9재학당(문헌공도)을 세워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그의 학문적 명성이 높아 해동공자라 칭송받았을 정도였다. 최충의 성공을 계기로 비슷한 사립학교가 잇달아 세워져 사학 12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데, 과거 급제자를 다수 배출하며 관학인 국자감을 압도할 만큼 크게 융성했다. 이런 사학의 융성은 문벌 귀족 가문이 학문적 명성과 인맥을 통해 세력을 재생산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관학 진흥책(양현고 설치, 7재 등)이 뒤따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학12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