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왕 폐위 — 폐가입진
이성계 세력은 우왕과 창왕이 실은 공민왕의 혈통이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는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 논리를 내세워, 창왕마저 폐위시키고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죽였다. 왕씨 혈통이라는 명분에 맞춰 이번에는 신종의 7대손인 정창군을 공양왕으로 옹립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이성계 세력이 마지막 남은 정통성 문제를 정리하고 왕조 교체를 위한 마지막 정지 작업을 마친 것이었다. 두 어린 왕을 연달아 갈아치운 이 사건 이후, 고려 왕조의 수명은 사실상 3년밖에 남지 않게 된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창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