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에 대한 사대 외교 채택

1126년 3월 · 개경

고려가 반환한 동북 9성 지역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급속히 성장해 거란(요)마저 멸망시키고 군신 관계를 요구해오자, 이자겸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실리를 앞세워 이를 받아들였다. 고려보다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고 여겨온 여진에 사대의 예를 갖춘 이 결정은 큰 논란을 불렀고, 서경 세력이 이를 사대주의적 굴욕으로 비판하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힘을 싣는 배경 중 하나가 됐다. 이 외교 노선은 이후로도 고려-금 관계의 기본 틀로 유지되며 양국 간 큰 충돌 없는 평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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