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왕 즉위

1388년 6월 · 개경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폐위한 이성계 세력은, 아직 왕조 자체를 무너뜨릴 명분과 준비가 충분치 않았기에 우왕의 9세 아들을 창왕으로 옹립해 고려 왕실의 틀은 일단 유지했다. 그러나 실권은 완전히 이성계와 조준 등 급진 개혁파 신진사대부에게 넘어가 있었고, 이들은 창왕 재위 기간 동안 토지 제도 개혁 등 새로운 국가 운영 구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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