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왕 즉위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폐위한 이성계 세력은, 아직 왕조 자체를 무너뜨릴 명분과 준비가 충분치 않았기에 우왕의 9세 아들을 창왕으로 옹립해 고려 왕실의 틀은 일단 유지했다. 그러나 실권은 완전히 이성계와 조준 등 급진 개혁파 신진사대부에게 넘어가 있었고, 이들은 창왕 재위 기간 동안 토지 제도 개혁 등 새로운 국가 운영 구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창왕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폐위한 이성계 세력은, 아직 왕조 자체를 무너뜨릴 명분과 준비가 충분치 않았기에 우왕의 9세 아들을 창왕으로 옹립해 고려 왕실의 틀은 일단 유지했다. 그러나 실권은 완전히 이성계와 조준 등 급진 개혁파 신진사대부에게 넘어가 있었고, 이들은 창왕 재위 기간 동안 토지 제도 개혁 등 새로운 국가 운영 구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