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1차 침입과 서희의 담판

993년 10월 · 평안 안융진

거란(요)은 고려가 송과 친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소손녕이 이끄는 대군으로 침입했다.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 땅을 떼어주자는 할지론까지 나왔지만, 서희가 직접 적진으로 가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내세우고 거란과의 국교 수립을 조건으로 강동 6주를 오히려 고려 영토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외교 협상만으로 영토를 넓힌 이례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 담판은, 이후 고려가 압록강 유역까지 국경을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왜 일어났나

거란은 송과 맞서면서 뒤쪽의 고려가 송과 손잡는 것을 막고 싶었다. 993년 소손녕이 80만이라 부르는 군대로 쳐들어와 고구려 옛 땅을 내놓으라 했다.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을 떼어주자는 말까지 나왔는데, 서희는 거란의 진짜 목적이 땅이 아니라 고려와 송의 관계를 끊는 것임을 읽고 담판에 나섰다.

무엇이 달라졌나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우고, 여진이 길을 막아 거란과 통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거란은 물러갔고 고려는 오히려 압록강 동쪽 강동 6주를 얻어 성을 쌓았다. 이 땅이 뒤에 거란 2차·3차 침입의 방어선이 되었고, 귀주대첩이 벌어진 자리도 여기다. 싸우지 않고 땅을 넓힌 외교의 대표 사례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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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고려 지도(918~1392)의 사건입니다 — 고려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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