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방 설치와 폐해

1275년 · 개경

매사냥을 즐기던 원 황실에 매를 진상하기 위해 고려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어 전국에서 매를 잡아 바치게 했는데, 응방에 소속된 자들이 그 권세를 등에 업고 백성을 수탈하는 폐단이 극심했다. 이는 원 간섭기 고려가 감당해야 했던 각종 공물·조공 부담의 한 사례로, 금·은·인삼·처녀(공녀) 등과 더불어 백성들의 삶을 짓누르는 요인이었다. 이런 수탈 구조는 100년 가까이 지속되며 고려 사회의 피로도를 계속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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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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