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시무10조를 올리다

885년 · 금성(경주)

12세에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 토벌 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최치원은, 귀국 후 진성여왕에게 국정 개혁을 담은 시무10조를 올렸다. 그러나 골품제의 벽에 막혀 6두품 출신인 그의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라 왕실의 개혁 의지 부족에 실망한 그는 결국 관직을 버리고 가야산 등지에서 은둔했다. 골품제에 좌절한 6두품 지식인들의 이런 이탈은, 신라 하대 지배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새 시대를 열망하는 지식인층의 존재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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