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 설화 — 개운포의 노래
헌강왕이 개운포(울산)에 나들이 갔다 구름과 안개로 길을 잃자 동해 용을 위해 절을 세우기로 했고, 구름이 걷혀 개운포라 불렸다. 용의 아들 하나가 왕을 따라 서울로 와 급간 벼슬을 받으니 처용이다. 아내가 아름다워 역신이 흠모해 밤에 몰래 자고 있었는데, 처용은 \"둘은 내 것이었고 둘은 뉘 것인고 / 본디 내 것이다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라 노래하고 춤추며 물러났다. 역신이 무릎 꿇고 \"공이 노하지 않으니 감탄스럽다, 이후 공의 형상만 보아도 그 문에 들지 않겠다\"고 맹세해, 사람들이 처용 얼굴을 문에 붙여 악귀를 물리쳤다고 한다 — 감염법칙(형상이 곧 실체)의 축귀 설화다. 물러선 태도의 해석은 갈린다. 처용을 무당으로 보고 노래와 춤 전체를 굿 절차로 읽는 견해, 「우적가」와 함께 선불교 공(空)사상의 표현으로 읽는 견해, 신라 하대 지방 세력이 중앙에 편입되며 겪은 굴욕의 알레고리로 읽는 견해가 있다. 처용의 정체도 화랑·무부·선승·지방호족·이슬람 상인설까지 제기된다. 8구체인 이 작품이 신라 향가 중 가장 늦은 시기(879)라는 점은 4구체→10구체 형식 진화론의 대표적 반례로 인용된다. 고려 「처용가」와 조선 궁중 나례의 처용무로 이어져 향가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헌강왕대는 겉으로 태평했으나, 같은 설화 말미에는 산신과 지신이 나타나 \"지리다도파도파\"(지혜로운 이들이 미리 알고 도망해 도읍이 파괴된다)라 경고했으나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겨 즐거움에 빠졌고 나라가 망했다는 기록이 붙어 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가
-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