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의 왕권강화 — 9주 5소경과 녹읍 폐지

685년 · 금성(경주)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며 즉위 초 진골 귀족 세력을 크게 숙청한 신문왕은, 이를 발판으로 통치 체제 정비에 나섰다.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전국을 9주로, 지방 요충지에는 5소경을 두는 9주 5소경 체제를 완성했고, 유교 정치 이념을 갖춘 인재를 기르고자 국립 교육기관 국학을 설립했다.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관리에게 곡물을 거둘 땅만 지급하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노동력까지 지배할 수 있어 귀족의 세력 기반이 되던 녹읍은 폐지했다(녹읍은 8세기 중엽 경덕왕 때 귀족의 반발로 부활한다). 군사 조직도 중앙군 9서당·지방군 10정으로 정비했는데, 9서당에는 신라인뿐 아니라 옛 고구려·백제·말갈 유민까지 포함시켜 민족 융합을 꾀했다. 이런 개혁으로 신문왕 대는 신라 왕권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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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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