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전투와 백제 멸망

660년 7월 · 황산벌(논산)

나당연합군 13만 명이 백제를 향해 진격하자, 백제 장수 계백은 결사대 5000명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맞아 네 차례 싸움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화랑 관창의 희생 이후 신라군의 사기가 오르며 결국 계백의 결사대는 전멸했다. 사비성(부여)까지 함락되자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피신했다가 곧 항복했고, 678년 역사를 이어온 백제는 이렇게 멸망했다.

왜 일어났나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는 100년 넘게 원수였다. 의자왕은 초기에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을 만큼 기세가 좋았으나, 후반에 귀족과 갈등하고 고구려·왜에 기대는 외교로 당과 멀어졌다. 660년 당의 소정방이 13만 군대를 배로, 신라의 김유신이 5만을 육로로 보내자 백제는 두 방향을 한꺼번에 막아야 했다.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막아선 것은 그 마지막 시도였다.

무엇이 달라졌나

황산벌이 뚫리고 열흘 만에 사비성이 무너졌다. 의자왕과 왕족·신하 1만 2천여 명이 당으로 끌려갔고, 당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두었다. 복신·도침·흑치상지가 부흥군을 일으켜 3년을 싸웠고 왜의 지원군이 백강에서 패한 뒤 끝났다. 백제 유민은 신라와 왜로 흩어졌고, 흑치상지처럼 당의 장군이 된 사람도 있었다. 계백의 이름은 뒤에 충절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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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고대 지도(기원전 57~936)의 사건입니다 — 고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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