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왕과 국내성 천도
주몽의 아들 유리왕은 부여에 남아 있다가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내려와 태자가 됐고, 주몽의 뒤를 이어 고구려 2대 왕이 됐다. 그는 서기 3년 도읍을 졸본에서 압록강 중류의 국내성(집안)으로 옮겨 이후 400여 년간 이어질 고구려의 중심지를 마련했다. 부여와의 관계 속에서 갈등도 겪었는데, 부여 왕이 볼모를 요구하자 아들을 보내는 등 초기에는 부여에 저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가 부인과의 갈등을 노래했다고 전하는 황조가는 한국 문학사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꼽힌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리왕
- 위키백과 황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