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당과 동맹을 맺다

648년 · 장안(당 수도)

642년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고 사위 김품석 부부가 죽는 등 국가적 위기에 몰린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왜에 잇달아 보내 지원을 요청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결국 648년 김춘추가 당 태종을 직접 만나 협상해,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대동강 이남을 신라가 갖는다는 조건으로 군사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신라의 외교력이 한반도를 넘어 당의 수도 장안까지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이는 이후 나당연합군의 백제·고구려 정복으로 이어졌다.

왜 일어났나

642년 백제가 대야성을 빼앗고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키자 신라는 두 나라 사이에 갇혔다. 김춘추는 먼저 고구려에 가서 도움을 청했다가 감금되었고, 왜에도 갔으나 소득이 없었다. 648년 당에 들어가 태종을 만난 그는 백제와 고구려를 함께 치자고 제안했고, 당은 요동에서 잇달아 실패한 뒤라 남쪽에서 협공할 동맹이 필요했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 동맹으로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무너졌다. 그러나 당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신라까지 계림도독부로 삼으려 했다. 신라는 670년부터 당과 싸워 676년 매소성·기벌포에서 당군을 몰아냈다. 김춘추의 외교는 삼국 통일의 길을 열었으나, 통일의 범위가 대동강 이남에 그친 이유도 이 동맹의 조건에 있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고대 지도(기원전 57~936)의 사건입니다 — 고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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