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의 난 — 나라 이름을 새로 지은 반란
785년 선덕왕이 죽었을 때 왕위 계승 서열 첫머리에 있던 사람은 김주원이었다. 그런데 큰비로 강물이 불어 그가 궁에 이르지 못하는 사이, 귀족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김경신을 왕으로 세웠다(원성왕). 김주원은 물러나 강릉으로 갔지만, 그 아들 김헌창은 37년을 품고 있다가 822년 3월 웅천주 도독으로 있으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그는 단순한 반란에 그치지 않고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여 스스로 왕을 칭했다. 무진주·완산주·청주·사벌주 같은 지방과 금관경 등 여러 소경이 호응해 한때 신라의 서쪽 절반이 그의 손에 들어갔다. 조정이 군대를 모아 치자 한 달 남짓 만에 무너졌고 김헌창은 웅천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3년 뒤 아들 김범문이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가 잡혀 죽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규모보다 그 성격에 있다. 진골 귀족이 왕위 다툼에서 밀리자 지방 군사력을 업고 새 나라를 선포했고, 지방들이 거기 따라붙었다. 골품제 안에서 왕위를 두고 싸우던 갈등이 지방의 이탈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은 뒷날 장보고의 왕위쟁탈전 개입, 원종·애노의 난, 그리고 견훤·궁예가 제 나라를 세우는 후삼국으로 이어진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4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헌창의 난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고대 지도(기원전 57~936)의 사건입니다 — 고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