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담사 — 찬기파랑가와 안민가

765년 3월 · 경주 남산 삼화령 / 귀정문

『삼국유사』 권2는 경덕왕이 3월 삼짇날 귀정문에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올리고 오던 승려 충담사를 만난 장면을 전한다. 왕이 \"대사가 지은 「찬기파랑가」의 뜻이 매우 높다(其意甚高) 하니 과연 그러한가\" 묻고, 백성을 편안히 할 노래를 청하자 그 자리에서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두 작품은 성격이 정반대다. 「찬기파랑가」는 화랑 기파랑을 기리는 10구체 찬가인데, 인물됨을 직접 말하지 않고 달·흰구름·물가·자갈·잣나무·눈 같은 자연물의 대립 구조로만 그린다. 마지막 \"아으, 잣나무 가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에서 눈(시련·오염)이 미치지 못하는 높이로 절개를 표현했다 — 형용사 하나 없이 사물의 높이로 사람을 그린 것이다. 기파랑이 실존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아 화랑도의 이상을 인격화한 존재로 보거나 경덕왕대 실각한 인물로 읽는 견해도 있다. 반면 「안민가」는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 아이라\", \"아으,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로 유교 정명(正名) 사상이 뚜렷한 교훈시가다. 같은 작가가 하루에 서정적 찬가와 정치적 교훈가를 남겼다는 사실이 향가라는 갈래의 폭을 보여준다. 향찰 해독은 학자마다 차이가 커서 양주동 계열과 김완진 계열의 풀이가 여러 구절에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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