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 평양으로 천도하다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국내성 중심의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남쪽으로의 진출을 강화하기 위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79년이라는 고구려 역대 최장 재위 동안 왕권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남북조와 각각 교류하는 실리외교를 펼쳤다. 이 천도는 이후 백제·신라를 강하게 압박하는 남진정책의 발판이 됐다.
왜 일어났나
장수왕이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다. 국내성은 산성에 기댄 방어의 도시였고, 평양은 대동강 평야와 바다를 낀 생산과 교역의 도시였다. 광개토대왕이 넓힌 땅을 다스리려면 남쪽 중심지가 필요했고, 옛 도읍의 귀족 세력을 약하게 만들 필요도 있었다. 천도는 남진 정책의 선언이기도 했다.
무엇이 달라졌나
고구려의 무게중심이 한반도로 내려오면서 백제와 신라가 위협을 느껴 나제동맹을 맺었다. 475년 고구려는 한성을 함락시켜 개로왕을 죽였고 백제는 웅진으로 쫓겨 갔다. 평양은 이후 고구려가 멸망하는 668년까지 240년간 도읍이었고, 고려가 서경으로 삼고 묘청이 천도를 주장한 것도 이 도시의 무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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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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