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문학 기행
갈라진 모국어 — 분단과 독재의 시대, 문학이 지킨 것들
타임라인 (20개 지점)
- 해방공간 — 되찾은 모국어, 곧장 갈라진 문단 (1945 8월 · 서울)
해방을 맞은 서울 거리, 1945년 8월 · 사진 작가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해방 다음 날인 8월 16일 임화가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세우면서 문단 재편이 시작됐다. 좌파는 조선문학가동맹으로 결집했고, 김동리·조지훈·서정주 등은 이에 맞서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었다 — "문학은 정치의 도구인가, 그 자체로 목적인가"라는 순수-참여 논쟁의 원형이 여기서 태어나 이후 반세기 한국문단을 관통한다. 1부 「근대문학 기행」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 『청록집』 — 폐허 위에 핀 자연의 언어 (1946 6월 · 서울 을유문화사)
청록파 시인 박목월, 1976년 · 사진 경향신문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조지훈·박목월·박두진 세 시인의 합동시집 『청록집』이 나왔다. 일제 말 《문장》지로 등단한 이들은 이념 대립이 문단을 찢던 해방공간에서 자연과 전통의 언어를 택했다 —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박목월),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조지훈). 청록파라는 이름은 이 시집에서 왔고, 한국 서정시의 한 축이 됐다.
- 38선을 건넌 작가들 — 월북과 월남 (1947 · 38선 (임진각 일대))
파주 임진각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이범수 (공공누리 제1유형)단정 수립이 가시화되자 문인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임화·이태준·오장환·김남천이 북으로 갔고, 황순원·김이석 등은 남으로 내려왔으며, 백석은 고향에 그대로 남아 재북 작가가 됐다. 이 선택은 곧 작품의 운명이 됐다 — 남에서는 월북·재북 작가의 이름과 작품이 통째로 금지됐고, 북에서는 남쪽 문학이 지워졌다. 하나의 문학사가 두 개의 반쪽짜리 문학사로 갈라진 순간이다.
- 피란수도 부산 — 다방에서 이어간 문학 (1951 · 부산 광복동)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부산관광공사 (공공누리 제1유형)전쟁이 서울을 삼키자 문인들은 부산으로 모였다. 광복동 다방 밀다원은 갈 곳 없는 문인들의 사랑방이 됐고(김동리는 훗날 이를 「밀다원 시대」로 썼다), 피란지의 궁핍 속에서도 잡지가 나오고 시가 낭송됐다. 손창섭·장용학 등 전후문학 세대가 여기서 잉태됐다 — 폐허와 실존의 문학, 「비 오는 날」의 눅눅한 절망은 이 시절의 산물이다.
- 임화 처형 — 혁명이 시인을 삼키다 (1953 8월 · 평양)
임화, 1945년 무렵 · 사진 작가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KAPF의 얼굴이자 「우리 오빠와 화로」의 시인 임화가 평양에서 처형됐다. 죄명은 "미제 간첩" — 남로당 숙청의 일환으로 조작된 재판이었다. 식민지에서는 계급 해방을 노래했고 해방 후에는 북을 택했던 시인이, 그 북에서 스파이로 몰려 죽었다. 1부 KAPF 카드에서 예고한 결말이자, 분단이 문학에 가한 폭력의 가장 압축적인 장면이다.
- 황순원 — 「소나기」, 전쟁의 한복판에서 지킨 서정 (1953 · 서울)
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김지호 (공공누리 제1유형)평안도에서 월남한 황순원은 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 소년과 소녀의 가장 맑은 이야기 「소나기」를 발표했다. 학살과 이념의 시대에 그는 인간의 품위를 서정의 언어로 지켰고, 『카인의 후예』에서는 북한 토지개혁기의 폭력을,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는 전쟁이 젊은 영혼에 남긴 상처를 기록했다 — 어떤 진영의 깃발도 들지 않으면서 시대 전체를 증언한 작가다.
- 이범선 — 「오발탄」, "가자!"라는 신음 (1959 · 서울 해방촌)
서울 용산 해방촌 · 사진 서울관광재단 · 공공누리 제1유형 · 위키미디어 공용월남민이 모여 살던 해방촌을 무대로 한 「오발탄」의 주인공 철호는 치과에서 이를 두 개나 뽑고 피를 흘리며 택시에서 중얼거린다 — "가자". 실성한 어머니가 온종일 외치는 그 "가자"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다. 전후 한국사회의 궁핍과 상실을 이만큼 응축한 단편은 드물고, 유현목의 영화(1961)는 군사정권에서 상영 중단을 겪으며 그 자체로 검열의 역사가 됐다.
- 최인훈 — 『광장』, 4·19가 열어준 공간 (1960 11월 · 서울)
4·19 혁명 기념탑 · 사진 RyuMinjoo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 남과 북을 모두 겪고 제3국행 배에서 바다로 사라지는 포로 이명준의 이야기 『광장』은 4·19 직후의 짧은 자유가 아니었다면 발표될 수 없었다. 최인훈 스스로 서문에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이 이 소설을 가능하게 했다고 썼다. 분단을 남북 어느 쪽의 선전도 아닌 실존의 문제로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 남정현 「분지」 필화 — 소설이 법정에 서다 (1965 · 서울)
미군 주둔의 현실을 풍자한 단편 「분지(糞地)」가 북한 신문에 전재됐다는 이유로 작가 남정현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 한국 문학사 최초로 소설 그 자체가 기소된 사건이다. 법정에서는 "작품 속 인물의 생각이 곧 작가의 사상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선고유예로 끝났지만 이 사건은 이후 30년간 이어질 필화 시대의 개막이었다.
- 동백림 사건과 천상병 — 고문이 앗아간 것 (1967 7월 · 서울)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시인 천상병이 엮여 들어갔다 — 친구에게 술값 몇 푼 받은 것이 "공작금 수수"가 됐다. 여섯 달의 고문과 옥살이 뒤 그는 심신이 무너졌고, 행려병자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고도 그가 쓴 시가 「귀천」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국가폭력이 한 시인에게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시가 그것을 어떻게 초월했는지의 기록이다.
-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1967 1월 · 충남 부여)
신동엽 시비 · 사진 Orionman · CC BY-SA 3.0 · 위키미디어 공용"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부여 출신 신동엽은 동학에서 4·19로 이어지는 민중의 알맹이를 노래하고, 장편서사시 『금강』(1967)에서 전봉준의 혁명을 되살렸다. 4·19의 좌절을 가장 아프게 앓은 시인이었고, 1969년 서른아홉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비가 백마강가에 서 있다.
- 김수영 — 「풀」, 마지막 시 (1968 6월 · 서울)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이 시를 발표하고 보름 뒤, 김수영은 버스에 치여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4·19에서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의 자유를 노래했고, 소시민인 자신의 옹졸함까지 시의 재료로 삼았던 정직한 시인 — 참여시와 모더니즘을 한 몸에 구현한 그는 죽어서 이후 모든 세대 시인들의 기준점이 됐다.
- 박경리 — 『토지』, 26년 대하의 시작 (1969 9월 · 경남 하동 평사리)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한국관광공사 (공공누리 제1유형)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시작하는 대하소설 『토지』의 연재가 시작됐다 — 완간까지 26년, 원고지 4만여 장, 등장인물 700여 명. 구한말에서 해방까지 민족사 전체를 개인들의 운명으로 직조한 이 작품을 박경리는 사위 김지하의 투옥, 자신의 암 수술을 겪어내며 썼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 — 그가 말한 문학의 자리다.
- 김지하 「오적」 필화 — 풍자가 국가보안 사건이 되다 (1970 5월 · 서울)
김지하 · 사진 LTI Korea · CC BY-SA 3.0 · 위키미디어 공용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댄 담시 「오적」이 《사상계》에 실리자, 정권은 시인과 편집인을 반공법으로 구속하고 잡지를 사실상 폐간시켰다. 판소리 가락의 풍자시 한 편이 국가보안 사건이 된 것이다. 김지하는 이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고(후에 재심 무죄), 옥중에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썼다 —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 문인들, 거리에 서다 (1974 11월 18일 · 서울 광화문)
광화문과 정부종합청사, 1971년 · 사진 작가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유신의 한복판에서 고은·신경림·백낙청·염무웅 등 문인 101인이 광화문에 모여 개헌과 구속 문인 석방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발이다. 낭독하던 문인들이 그 자리에서 연행됐지만, 이 조직은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로 이어지며 문학과 민주화운동이 만나는 통로가 됐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몸으로 쓴 문장이었다.
-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 소록도가 던진 질문 (1976 · 전남 고흥 소록도)
고흥 소록도 공원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김지호 (공공누리 제1유형)한센인 강제 격리의 섬 소록도에서 "낙원"을 건설하려는 병원장과 주민들의 이야기 『당신들의 천국』은 묻는다 — 동의 없는 천국은 누구의 천국인가. 유신 시대에 이보다 정면으로 권력의 본질을 겨눈 소설은 드물었지만, 우화의 형식이 검열을 통과시켰다. 「서편제」·「눈길」의 작가 이청준은 남도의 한(恨)과 소리를 문학의 언어로 옮긴 사람이기도 하다.
-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 · 서울)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 재개발로 철거되는 낙원구 행복동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는 전태일 분신(1970)이 드러낸 산업화의 그늘을 문학으로 증언했다. 짧고 건조한 문장의 연작 형식은 검열 시대의 미학적 발명품이었다. 『난쏘공』은 이후 40여 년간 320쇄를 넘기며 읽혔는데, 조세희는 생전에 "이 책이 여전히 읽힌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아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광주 — 문학, 학살을 기록하기 시작하다 (1980 5월 · 광주)
광주 5·18 자유공원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이범수 (공공누리 제1유형)1980년 5월의 광주는 오랫동안 말해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 그래서 문학이 먼저 기록했다. 시인들은 동인지 《오월시》로, 임철우는 『봄날』로, 황석영과 기록자들은 지하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를 펴내 금서가 됐다. 진실이 보도될 수 없을 때 소설과 시가 보도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이 기억의 릴레이는 훗날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로 이어진다 — 3부 「현대문학 기행」에서 만나게 될 장면이다.
- 해금 — 백석과 정지용이 돌아오다 (1988 7월 · 서울)
옥천 정지용문학관 일대 · ©한국관광콘텐츠랩 · 촬영 김지호 (공공누리 제1유형)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정부가 월북·재북 문인들의 해방 전 작품을 해금했다. 40년간 이름조차 인쇄할 수 없어 "정○용"·"백○"으로 표기되던 시인들이 돌아왔다 — 정지용의 「향수」는 가곡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백석은 이후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부활했다. 1부에서 예고한 복선의 회수이자, 반쪽이었던 문학사가 온전한 지도를 되찾기 시작한 순간이다.
- 문민시대의 문턱 — 새로운 목소리들 (1993 · 서울)
군부의 시대가 끝난 1993년,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가 나왔다 — 시대의 대의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과 문체 그 자체가 문학의 중심으로 올라선 신호탄이었다.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사소한 것들의 진실이 조명되는 90년대 문학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 새로운 목소리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 광주를 다시 쓰는 한강, 그리고 2024년 노벨문학상까지 — 는 3부 「현대문학 기행」(현대 지도)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