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東伯林) 사건 —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조작된 간첩단
"동백림"은 동베를린을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서울을 "한성", 베를린을 "백림"이라 적던 관행에서 나왔다). 6·8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전국적으로 절정에 이르자, 1967년 7월 8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유럽 거주 유학생·교민 194명이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을 거점으로 대남 간첩활동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등은 평양을 한 차례 방문하고 북한대사관에서 식사를 한 정도였는데도 서독 현지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강제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시인 천상병은 동베를린에 다녀온 지인과 막걸리를 마시며 1,000원을 받은 일로 끌려가 6개월간 전기고문을 당했고, 이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이 온전치 못한 채 살았다. 정작 간첩죄로 기소된 인원은 23명에 불과했고 서독 검찰 수사로도 대규모 간첩단의 존재는 끝내 입증되지 않았다. 중앙정보부 요원의 서독 내 강제 납치 행위는 서독과의 외교 단절 위기로까지 번졌고, 정부는 결국 서독의 압박에 굴복해 핵심 피해자들을 조기 석방했다. 정치적 위기를 안보 위협으로 돌리려 한 전형적인 공작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동백림사건
- 민주화운동사전 동백림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