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 공수부대 투입과 초기 진압 (5.18~20)

1980년 5월 18일 · 광주 (전남대·금남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 다음 날인 1980년 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 앞에서 등교를 막던 7공수여단과 학생들이 충돌했다. 공수부대는 시위 학생만이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까지 가리지 않고 진압봉과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거나 옷을 벗기는 등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 19일에는 시민과 고등학생까지 시위에 합류해 참가 인원이 최소 3천 명을 넘었고, 보안사 통제를 받던 언론이 시위대를 "폭도"로 보도한 데 격분해 광주MBC가 방화됐다. 20일 밤에는 100여 대의 택시·버스가 가두시위에 동참했고, 자정께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의 첫 집단발포가 있었다. 2군사령부가 발포·실탄배분 금지를 명령했지만 11공수여단은 이를 무시했다 — 다음 날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는 전조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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