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성립 — 초기 중심지는 요동이었다
단군신화는 기원전 2333년을 고조선의 건국연대로 전한다. 고고학적으로 실체가 뚜렷이 확인되는 국가 단계의 정치체는 대략 기원전 4세기 무렵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학계 다수의 견해다. 이때 고조선의 중심지는 평양이 아니라 요동 지역(대체로 지금의 개평·개주 일대로 비정)이었다는 "중심지 이동설"이 남한 학계의 지배적 견해다 — 요동 지역에서 비파형동검문화를 기반으로 성립한 고조선이,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침입을 받아 요동 영토를 대거 상실하면서 평양(대동강) 일대로 중심을 옮겼다는 것이다. 북한 학계는 1960년대 이후 요동중심설(중심지 이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요동이었다는 설)을 정설로 채택하고 있다. 신화상 건국연대와 고고학적 국가 성립 시기 사이의 간극, 그리고 초기 중심지 위치는 낙랑군 위치 논쟁과 마찬가지로 신화·정치적 해석과 역사적 실체를 구분해 정직하게 다뤄야 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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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조선
- 위키백과 고조선
- 우리역사넷 "고조선의 위치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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