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조선 — 철기와 중계무역으로 성장하다
연나라의 침입 이후 요동에서 평양(왕검성) 일대로 중심을 옮긴 고조선에, 중국 연나라 출신 위만이 한나라 건국 초 혼란을 피해 무리를 이끌고 망명해왔다. 그는 기원전 194년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위만과 그 뒤를 이은 왕들은 철기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한반도 남부와 중국 사이의 중계무역을 장악해 고조선을 크게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 성장은 한나라와의 긴장으로 이어져, 손자 우거왕 때 결국 한 무제의 대규모 침공을 받게 된다.
왜 일어났나
기원전 194년 연나라에서 건너온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진·한 교체기에 많은 유민이 요동과 한반도 서북으로 밀려왔고, 위만은 그 유민을 등에 업은 인물이었다. 준왕이 그를 서쪽 국경을 지키는 신하로 삼았다가 오히려 밀려난 것은, 철기와 중국식 군사 기술을 가진 세력이 재래 세력을 압도했다는 뜻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이름과 땅을 이어받으면서 철기와 중계무역으로 부강해졌다. 한나라와 남쪽 진국 사이에서 무역을 독점하려 한 것이 곧 한 무제와의 충돌로 이어져 기원전 108년 멸망한다. 위만을 중국인으로 볼지 고조선 사람으로 볼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는데, 사마천의 『사기』가 그가 상투를 틀고 조선 옷을 입었다고 적은 대목이 자주 인용된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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